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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왜 괴질 환자 됐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국경제 괴질을 앓고 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최근 외지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 잇따라 내리고 있는 비관적 진단들이다.
「한국인이 몰려온다」「한국의 기적」「제2의 일본」등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던 말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서울올림픽이 끝 난지 1년 남짓.
짧은 기간 동안에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는「기적」에서「괴질」로 1백80도 뒤 바뀌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외부의 평가 자체가 한국경제의 본질적 변화에 대해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피상적으로 관찰한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가의 대상인 우리로서는 제3자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 반성의 계기로 삼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최근 들어 한국경제의 변화·어려움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일본 아사히신문 발행 주간지 아에라(AERA)의「신흥 공업국가군 무섭지 않다」(10월 3일자).
미국 워싱턴 포스트의「갈등 겪는 과소비풍조」(9월 26일자) 프랑스 라 트리뷴의「한국, 페레스트로이카의 열매들에 눈짓(9월26일자), 미국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한국의 기적, 헛될 것인가(9월 18일자),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한국성장, 전환점의 문제」(8월10일자)등이 있다.
AERA의 경우 올림픽 개막직전인 지난해 9월13일「한국기술 용의 발톱을 갈다」라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여기서 AERA는 서울 세운상가 전자 제품점, 금성사 부산공장, 삼성전자 사업부 및 대덕 한국공과대학(KIT)등 한국 전자산업·기술의 본산들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달성한 이 용이 이제「기술」이라는 발톱을 예리하게 갈기 시작했다. 올림픽 특수 에네르기로 가득찬 이 용은 과연 어디까지 솟아오를 것인가』
여기서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것은 한국의 기술 개발 및 경제성장에 대한 경계심이다.
하지만 그 AERA가 1년 뒤인 10월3일자에서는「한국 등 신흥 공업 국가 군은 이제 두렵지 않다」는 공언하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면서『(한국은) 성장의 에네르기였던 수출이 침체되어 실질 경제 성장률이 저하되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AERA는『(한국이)10년, 20년으로 일본을 추월할 수 있겠는가』고 반문하고서는 「2000년대 한국의 1인당 GNP가 7천3백97달러인데 비해 일본은 그 4배 이상인 3만1천58달러」라고 분석한, 일본 노무라 종합연구소의 예측을 답변으로 들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은 이제 일본의 위협상대가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국인의 근면성 및 한국 경제성장에 대해 경이의 시선을 보내던 서구 언론의 태도도 달라졌다.
지난해만해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한국관계특집(88년 5월4일)을 다루면서『한국인들은 1년 평균 2천5백 시간을 일함으로써 근면한 일본인보다도 25%, 미국인보다는 50%이상이나 더 열심히 일한다』고 놀라워했다.
또『원화의 급속 절상이 없고 기민한 경영이 유지된다면 고도화를 통해 이윤을 얻고 있는 일본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이「제2의 일본」이 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하지만 올해 영국의 파이 낸 셜 타임스(89년8월10일)지는『한국의 경제발전이 심각한 불균형에 의해 저해 받고 있으며 엄청난 어려움을 겪지 않고서는「제2의 일본」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비관론을 펴고 있다.
또 미국의 워싱턴포스트(89년 9월21일)는 한국의 과소비 열풍과 근면성의 상실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근면한 일 벌레였던 한국이 소비국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라 트리뷴(89년 9월26일)역시 한국경제가 대외수출격감, 사회 분위기 악화, 그리고 평화로운 노동력과 안정된 사회여건을 찾는 기업들의 대외투자급증과 대 공산권 교역 등으로 금년 들어 계속「괴질」을 앓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일련의 비관적 견해들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한국경제와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의 태도변화다.
1년 전만 하더라도「솟아오르는 용, 기술이라는 발톱을 갈다」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던 것이 이제는「한국은 두렵지 않다」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돌발적인 것은 아니다.
서울올림픽이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올림픽이후의 한국 경제침체」에 대해 치밀한 분석을 해놓고도「한국이 발톱을 갈다」고 엄살을 부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노무라 종합연구소가 지난해 서울올림픽 이전에 내놓은「원고하의 한국경제」라는 연구 보고서는 현재 한국 경제의 실상을 너무나 잘 예측해 절로 혀가 내둘러질 정도다.
당시 노무라연구소는 ▲원고로 인한 수출신장둔화 ▲정부의 자금줄 죄기 ▲올림픽 이후경제의 슬로다운 등의 요인을 들어 89년 실질 경제성장률이 7∼8%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이같이 정확한 분석 바탕 하에 올해 한국의 노사쟁의와 그 경제적 파급효과까지 고려해 한국의 성장 잠재력이 일본에 못 미친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
일본의 일부 기술진들은 한국에 자동차기술을 제공한 후에도 한국 측으로부터 고장 등에 관한 문의가 잦았지만 그 내용들이 너무나 초보적인 것들이었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기술 이전에 따른 부머랭 효과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연구소나 기업인들의 이 같은 예측은 한국정부기관이나 일부 연구단체들이「올림픽만 성공적으로 치르면 한국도 선진국 진입」이라는 장미 빛 환상을 가졌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냉철한 분석이다. <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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