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로 가는 헝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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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침내 헝가리에서 역사적 실험이 시작됐다.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래 사상 최초로 집권 공산당 스스로가 당을 해체하고 새로운 이념의 사회주의 정당 창당을 선언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기존 질서인 동·서유럽블록을 깨고 헝가리가 중립화 또는 서유럽으로 복귀하는 역사적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 임시 당 대회 결정으로 헝가리 공산당은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칙에서 탈피, 사회민주주의의 본류로 돌아가게 됐다.
즉 공산당 1당 독재·스탈린주의·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다당제에 입각한 의회민주주의,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체제로 전환케 된 것이다.
당초 당 대회 개최에 앞서 개혁파와 보수파, 그리고 개혁파 내 급진·온건세력의 대립으로 당이 2분 또는 3분될 것이라는 우려는 온건개혁파인 니에르슈당 의장의 온건 수정안이 채택됨으로써 일단위기를 넘겼다.
이번에 채택된 헝가리 사회당 창당 선언문에서『신당은 중·동유럽 좌익정당, 세계의 개혁적 공산주의·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정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밝힌 것은 니에르슈의 온건 수정안이 채택된 것으로 해석돼 그의 정치적 위치도 더욱 확고해져 신당의 최고지도자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새로운 정당은 정치·사회적 개혁을 더욱 과감히 추진할 것이다. 우선 다음달 하순으로 예정된 대통령선거, 그리고 내년 상반기 중으로 예정된 다당제에 입각 한 자유총선 계획을 적극 추진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대외적으로 EC(유럽공동체) 가입추진, 중립화등 대 서방 적극외교로 나설 것이 틀림없다. 다만 바르샤바조약기구·코메콘(동유럽 경제상호 원조회의) 탈퇴문제는 섣불리 착수하지는 않을 것이며, 소련 및 기타 동유럽 국가들과의 정상적 관계도 계속 유지하는 신중한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련은 이번 사태에 대해 아직은 공식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으나 그 동안 거듭 표시해온「사회주의권 각국의 고유주권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크게 바꾸지는 않을 것 같다. 이밖에 동독·체코.·루마니아 등 보수노선 국가들의 압력은 현재로선 무시해도 좋은 상황이다.
한편 미국 등 서방측도 이번 사태에 대해 아직은 공식 입장 표시가 없으나 지난번 부시 미대통령의 헝가리 방문 때 그가 보여준 헝가리 민주화 노력에 대한 찬사, 미국과의 경제협력강화 발언 등으로 볼 때 상당한 호의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과 서유럽 지도층 일부에선 소련·동유럽에 대한 일종의「신 마셜플랜」이 주장되고 있는 등 동 유럽권에 대한 정치·경제지원 필요론 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고려될 것은 이른바「중 유럽」의 부활 현상이다. 유럽역사를 통해 볼 때 독일. 폴란드·체코·헝가리·오스트리아 등으로 구성되는 중 유럽세력은 제2차대전후 독일의 분단, 그리고 소련이 주도하는 인위적인 동유럽블록의 출현으로 역사무대에서 사실상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헝가리의 정치변화는 새로운 역사변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번 헝가리 공산당 임시 당 대회 결정은 앞으로 더 큰 변화를 예고하는 하나의 역사적 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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