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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덕에 기사회생해 재선 예약한 차이잉원

중앙일보

입력

11일 대만 총통선거가 치러진다. 현재로썬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출신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의 재선이 확실시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인기가 바닥을 기었는데 놀라운 상황 반전이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1년 전만 해도 지방선거 참패로 정계 은퇴 위기에 몰렸으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강경한 대만정책과 홍콩 시위 사태 등에 힘 입어 11일 치러지는 대만 총통 선거에서 재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1년 전만 해도 지방선거 참패로 정계 은퇴 위기에 몰렸으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강경한 대만정책과 홍콩 시위 사태 등에 힘 입어 11일 치러지는 대만 총통 선거에서 재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선 시계추를 대만에서 지방선거가 치러진 2018년 11월 24일로 돌려보자. 당시 차이잉원이 이끄는 민진당은 라이벌 국민당에 치욕적인 참패를 당했다. 6개 지역을 챙겼을 뿐 15개 지역을 국민당에 내줬다.

2018년 지방선거 참패하며 정계 은퇴 생각 #2019년 초 시진핑 연설로 반전 계기 마련 #시의 무력사용 운운에 “대만 지키자” 맞불 #“홍콩의 오늘이 대만의 내일이다” 외치며 #지지층 재결집 성공하며 30% 이상 리드해

문제는 민진당 텃밭인 대만 남부의 가오슝(高雄) 시장 자리를 20년 만에 처음으로 국민당에 뺏긴 것이었다. 사상 첫 국민당 출신 가오슝 시장이 된 한궈위(韓國瑜)의 인기가 치솟으며 차기 총통 자리를 예약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차이잉원은 그날 민진당 당수 자리에서 물러나며 “지지해주신 분들을 실망하게 해 참으로 죄송하다”는 사과 성명을 내야 했다. 차이가 추구한 노동 개혁과 연금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대만 경제 상황도 나쁜 데 대해 책임 추궁을 당했다는 평가가 따랐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중국의 강경한 대만정책이 발표되자 "대만의 주권을 지키자"는 슬로건을 내걸어 지지층 재결집에 성공했다. [AP=연합뉴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중국의 강경한 대만정책이 발표되자 "대만의 주권을 지키자"는 슬로건을 내걸어 지지층 재결집에 성공했다. [AP=연합뉴스]

차이의 정치 생명은 그걸로 끝난 것으로 보였다. 당내에선 라이칭더(賴淸德) 전 행정원장이 부상하며 차이를 대신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반전의 계기가 생겼다. 뜻밖에도 차이에 새 생명의 기회를 부여한 건 시진핑 주석이었다.

지난해 1월 시 주석이 ‘대만 동포에 고하는 글’ 4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연설이 문제가 됐다. 시 주석은 대만과의 통일 방안으로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나라 두 체제)’를 강조하며 여의치 않으면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 주석의 이런 위협에 대만에선 “결국 중국에 의해 대만이 망하나” 하는 ‘망국감(亡國感)’이 일었다. 차이는 재빨리 선거 전략 프레임을 바꿨다. “대만 독립 추구”가 아닌 “중국에 병합되는 걸 막자”, “대만을 지키자”로 미묘하게 변화를 꾀했다.

결정적 기회는 6월부터 시작됐다. 시 주석이 말하는 일국양제의 본보기인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가 벌어지면서 일국양제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차이는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적중했다.

지난해 4월 중순만 해도 대만 여론조사에서 국민당 후보 한궈위는 51.4%로 차이잉원(37.4%)을 앞서 나갔다. 그러나 홍콩 사태가 계속되며 대만인의 일국양제에 대한 반감은 갈수록 커졌고 지난해 10월 마침내 차이는 41.2% 지지율로 30.8%의 한궈위를 눌렀다.

대만 총통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나온 한궈위는 2018년 11월 민진당 텃밭 가오슝 시장으로 당선되며 돌풍을 일으켜 11일의 총통 선거에서도 한때 승리가 예상됐으나 지난해 홍콩 시위 등 변수가 생기며 절대적인 열세에 몰렸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 총통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나온 한궈위는 2018년 11월 민진당 텃밭 가오슝 시장으로 당선되며 돌풍을 일으켜 11일의 총통 선거에서도 한때 승리가 예상됐으나 지난해 홍콩 시위 등 변수가 생기며 절대적인 열세에 몰렸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연말 조사에선 차이 총통 측이 46.8%를 기록해 대륙과 가깝다는 이유로 지지도가 14.4%까지 추락한 한궈위 측을 무려 30% 이상 앞서는 상황이 됐다. 1년 만에 차이잉원은 정계 은퇴를 생각하다 총통 재선이 확실시되는 대반전을 이룬 것이다.

물론 다른 변수도 작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때리기에 몰두하면서 중국과는 전통적으로 각을 세워 온 민진당에 힘을 실어준 게 한몫했다. 또 페이스북에서 250만 팔로워를 거느릴 정도로 젊은 층과의 소통에 능한 차이의 역량도 중요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의 의도하지 않은 도움이 결정적이었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중국은 차이잉원과 민진당에 한사코 반대하는 입장인데 왜 이런 악수를 두게 됐을까. 판스핑(范世平) 대만사범대 정치연구소 교수는 중국의 권력 구조에서 그 답을 찾는다.

“중국은 왜 대만에 강경 정책으로 일관하나. 중국은 대만 민중이 자신을 좋아할지 말지에 신경 쓰지 않는다. 중국이 오직 중시하는 건 시진핑의 권력 안정화뿐이다.” 시 주석 권력 강화만 생각하다 보니 홍콩이나 대만 문제 등에서 연이어 악수가 나온다는 분석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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