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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똑같이 갚아줘라" 이란 13개 보복 시나리오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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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 의회 경찰이 6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DC 의사당 인근에서 경찰견을 동원해 이란의 테러에 대비한 보안검색 활동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의회 경찰이 6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DC 의사당 인근에서 경찰견을 동원해 이란의 테러에 대비한 보안검색 활동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의 죽음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군에 의한 같은 수위의 공격’을 지시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란 13개 보복 시나리오 예고 #혁명수비대 “미국 아끼는 곳 불바다” #CNN “미 B-52 6대 인도양 파견” #대이란 작전에 투입 가능성 #솔레이마니 장례식 인파 35명 압사

NYT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보복의 한도’를 정하기 위해 이란 정부의 국가안보회의(NSC)에 참석했다. 하메네이가 NSC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하메네이는 솔레이마니의 장례식에 참석해 눈물을 흘렸고 이 모습이 이란 전역에 중계되기도 했다.

NYT는 회의 사정에 밝은 이란 소식통 세 명을 인용해 하메네이가 이 자리에서 보복은 ▶미국의 국익을 겨냥하는 직접적이고 비례적인 공격이어야 하며 ▶이란군이 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나게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에 대해 “보복을 할 경우 이란이 한 것이란 점을 확실히 드러내길 원하는 것으로 대리인(proxies) 뒤에 숨어서 움직이는 이란의 통상적 전술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웃 국가인 시리아와 이라크에 있는 미군이나 페르시아만의 미군 기지, 사실상 전 세계의 미국 대사관과 외교관들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예측도 소개했다.

미국의 공격으로 숨진 이란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유해가 7일 고향인 케르만에 도착하는 모습. 군중들이 몰려들면서 이곳에서 최소 35명이 사망하고 48명이 다쳤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다. [EPA=연합뉴스]

미국의 공격으로 숨진 이란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유해가 7일 고향인 케르만에 도착하는 모습. 군중들이 몰려들면서 이곳에서 최소 35명이 사망하고 48명이 다쳤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다. [EPA=연합뉴스]

보도가 사실이고 실제 이란이 이런 직접적 보복 방식을 택한다면 자칫 미국과의 전면전으로 확산될 우려도 있다.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면 모를까, 미군이나 미국 공관을 공격한 주체가 이란군이라는 점이 명백하다면 미국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알리 샴커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은 13개의 대미 보복 시나리오를 예고했다. 그는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을 살해한 미국에 보복하는 시나리오 13개 가운데 가장 약한 경우가 ‘미국인에게 잊지 못할 역사적인 악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미 보복 작전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미국이 중동에서 즉시 스스로 나가지 않으면 그들의 시체가 중동을 뒤덮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이란은 ‘정상급 말 폭탄’도 주고받았다. 이란 정부가 5일 핵 합의상 우라늄 농축 제한 의무를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6일 트위터에 “이란은 결코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고 올렸다.

약 2시간30분 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트윗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내 52곳을 조준하고 있다고 위협하며 ‘52’를 1979년 주이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억류됐던 미국인 수와 연결시킨 데 대해 로하니 대통령은 “52를 언급하는 자들은 290이란 숫자도 기억하라. #IR655”라고 썼다. IR655는 1988년 미군의 오판으로 격추된 이란 민항기 편명이다. 당시 아동 등을 포함해 탑승객 290명이 전원 사망했다.

인도양 파견

인도양 파견

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7일 이란 남동부 케르만주(州) 주도 케르만의 솔레이마니 장례식에서 “우리는 적(미국)에게 보복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아끼는 곳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례식에 모인 군중은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장례식에 엄청난 사람이 몰리며 35명이 압사하고 48명이 다쳤다고 이란 국영TV가 전했다.

미국은 전략폭격기 B-52 6대를 인도양 내 디에고가르시아 공군기지로 파견할 계획이라고 미 CNN방송이 6일 보도했다. CNN은 익명의 미 당국자를 인용해 “B-52 폭격기는 지시가 내려지면 대(對)이란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고 전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라크 의회의 미군 철수 의결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규모 제재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이라크가 실제 미군을 쫓아낼 경우 부과할 경제 제재의 초안 작업을 고위 관료들이 이미 시작했다”고 관련 계획에 대해 브리핑받은 익명의 관계자 3명을 인용해 6일 보도했다. 익명의 관계자는 WP에 “실제 제재를 할지에 대한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으며 예비적 수준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도대로라면 논의가 시작됐다는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라크 제재 언급이 단순한 위협이 아닌 진심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미국이 이란을 때리면서 대이란 봉쇄 정책에서 핵심이자 동맹국인 이라크도 함께 때리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이라크 내 다수인 시아파 사이에서 반미 감정이 격화하면 중동 정세는 더 예측이 어려운 혼란으로 빠져들 우려가 크다.

미군 측이 실수로 이라크 정부에 미군 철수를 통지하는 심각한 기강 해이도 발생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라크 현지의 IS 퇴치 다국적군 사령관인 윌리엄 실리 미 해병대 준장은 이라크군에 “이라크의 주권과 의회와 총리의 미군 철수 요구를 존중해 향후 수일에서 수주 동안 앞으로의 이동을 준비하기 위해 병력을 재배치하겠다”고 통보하는 서한을 보냈다. 미군 철수는 못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발언과 배치되는 해당 서한의 수신처는 이라크 국방부의 바그다드 연합작전 사령부였다. 몇 시간 뒤 워싱턴의 펜타곤이 발칵 뒤집혔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실리 장군의 편지는 현재 우리 입장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이영희·임선영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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