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재계 신년회 3년째 패싱…기업 기살리기 또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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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2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 합동인사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김정숙 여사, 김명수 대법원장, 이낙연 국무총리, 최재형 감사원장, 노영민 비서실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유남석 헌재소장, 문희상 국회의장(대통령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신년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도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2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 합동인사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김정숙 여사, 김명수 대법원장, 이낙연 국무총리, 최재형 감사원장, 노영민 비서실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유남석 헌재소장, 문희상 국회의장(대통령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신년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도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제계가 애타게 듣고 싶었던 대통령의 속시원한 메시지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유니콘 11개로 늘고 고용 개선” #신년 인사회서 경제 성과 부각 #실질적인 규제완화 언급은 없어 #재계 “쓴소리도 들어줬으면…”

문재인 대통령은 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합동인사회 인사말에서 “우리 국민은 상생 도약으로 반드시 ‘함께 잘사는 나라의 국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저성장과 세계 경기 하강 어려움 속에 우리 국민은 상생으로 함께 잘사는 길을 선택했고, 이는 우리 경제를 더 단단하게 키우는 길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신규 벤처투자액과 신설법인 수 사상 최고, 11개로 늘어난 유니콘 기업 등을 지난해의 성취로 꼽았다. 지난해 11월까지 4개월 연속 30만 명 이상 늘어난 취업자 수와 13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한 청년고용률을 거론하며 고용의 양과 질 모두 뚜렷이 개선됐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우리는 조금 느리게 보이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더 빠른 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부가 선택한 길의 성과를 확인했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는 표현도 했다. 이제껏 정부가 해오던 대로 직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혁신성장보다 상생·공정사회에 방점

혁신성장 얘기도 있긴 했다. “신기술, 신산업의 진입과 성장을 가로막는 기득권의 규제도 더욱 과감하게 혁신해 나갈 것”이라고 했지만 혁신은 ‘상생 도약’을 위한 것이고, ‘공정사회’ 없이는 ‘상생 도약’도 없다는 말도 했다. 혁신보다 상생 도약이, 상생 도약보단 공정사회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가 간절히 원했던 실질적인 규제 완화나 친노동 기조의 정책 전환, 시장을 거스르지 않는 합리적인 정책 같은 발언은 없었다. 대통령은 3일 열리는 재계 주최 신년인사회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2017년 이후 3년 연속 불참이다. 재계에선 “신년에 중점을 두겠다는 정부의 경제 우선 정책이 단순 구호에만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신년인사회는 민간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행사가 갖는 상징성이 크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제계를 대표해 1962년부터 해마다 신년인사회를 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여타 경제단체도 신년회를 따로 열지 않고 대한상의 행사에 참여했다. 1884년 설립돼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대한상의의 상징성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다.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고 매년 1000여 명 이상의 경제인이 대한상의 주최 신년회에 모여 의지를 다졌다.

대한상의가 청와대에 문 대통령의 행사 참여 여부를 타진한 건 지난해 12월 초 무렵이다. 이에 청와대는 지난해 연말 문 대통령의 불참을 최종적으로 통보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부가 2일 여는 신년인사회에 재계 관계자들이 참석하기 때문에 3일 행사엔 참여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상의 주최 신년인사회는 민간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정부 합동 신년인사회와 다르다.

이에 앞서 청와대는 2017년 불참 당시에는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일정이 많다”고 설명했다. 2018년에는 “다른 단체들이 서운해할 수도 있어 경제계뿐 아니라 다른 단체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불참 사유를 댔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난해 1월 2일 연 정부 신년인사회에 경제단체장과 4대 기업 총수 등 경제계 인사를 초청했다.

올해도 지난해와 사정이 비슷하다. 청와대는 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정부 합동으로 연 신년인사회에 경제 5단체장과 4대 기업 총수 등 경제계 대표를 초청했다. 하지만 이들이 대통령과 따로 스킨십을 할 기회는 없었다. 4대 기업에서도 대통령에게 전달할 건의사항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이 3년 연속으로 재계 신년인사회에 불참한 건 전례가 없다. 1962년 첫 행사 이후 문 대통령 이전엔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건 1984년(전두환·아웅산테러 사건), 2007년(노무현·2006년 4대 그룹 총수 간담회), 2017년(박근혜·탄핵소추로 직무정지)이 유일했다.

대통령, 재계 신년인사회 3연속 불참 처음

이를 두고 재계에선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이어진 ‘경제계 거리 두기’의 일환이란 해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 살리기를 정책 우선순위로 둔 마당에 재계 신년회에 3년 연속 불참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경제를 살리자는 의지를 보여주는 측면에서 올해는 참석하는 게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기업 임원은 “대통령이 경제인의 가감 없는 의견을 들을 기회를 포기했다는 측면에서 아쉽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기업 임원은 “정초부터 쓴소리 하는 경제인이나 기업도 있겠지만 대통령께서 그런 얘기도 귀담아들어 주시면 좋겠다”며 “정부가 여는 행사에 기업인을 불러 양념처럼 들러리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재계 신년인사회는 대통령이 경제인과 만나며 의견을 나누는 창구로 활용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재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중소기업도 장기 마라톤 레이스에서 대기업과 나란히 함께 뛸 수 있도록 그렇게 체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그동안 구상해 왔고, 올해부터 바로 실천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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