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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폭탄은 터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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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애란
한애란 기자 중앙일보 앤츠랩 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중재기관이다. 그 이름이 생소한 사람도 ISD라고 하면 알지 모르겠다. 투자자-국가 간 소송, ISD 판정을 하는 대표적인 기관이 ICSID이다.

ICSID는 국제중재기관 중에서도 가장 굵직한 사건을 다룬다. 그렇다 보니 아무나 판정인으로 선임하지 않는다. 이 분야 내로라하는 검증된 소수만 ICSID 판정부로 선임한다. 그래서 다들 나이가 많다. 주류가 70대이고 80대, 90대도 있다. 국제중재 업계 관계자는 “60대도 약간 어리고, 한 70세는 돼야 ‘ICSID 중재 좀 해도 되겠다’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문제는 ISD 소송은 늘어나는데 판정인은 많지 않아 과부하가 걸렸다는 점이다. 평균 3~4년인 판정 기간이 점점 길어진다. ‘너무 오래 걸려서 진실을 밝히는 데 해가 된다’는 업계 불만이 크지만 고령화된 판정부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연말에 론스타 ISD 폭탄이 터진다. 그 전에 다른 출입처로 도망가라.”

지난해 봄,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가 ‘대피령’을 내렸다. 2012년 11월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그 ISD 판정이 임박했다는 이야기였다. 소송가액 무려 5조원대. ICSID 판정부가 맡은 ISD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오래 끌고 있는 초대형 사건이다.

지난해 11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다룬 영화 ‘블랙머니’가 개봉했다. 동시에 참여연대 등 진보 진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론스타 수사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진정서를 냈다. 영화 개봉부터 검찰 진정까지, 잘 짜여진 기획 세트였다. 누가 봐도 론스타 ISD 판정 예상 시기에 맞춰져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폭발은 없었다. 블랙머니는 곧이어 개봉한 ‘겨울왕국2’에 밀려 관객수 250만명에 그쳤다. 론스타 ISD 판정은 결국 해를 넘겼다. 일각에서는 70대인 조니 비더 중재재판장의 건강이상설을 제기한다.

2020년, 폭탄은 과연 터질 것인가. 정부는 폭탄의 파괴력(배상액)을, 금융관료는 ‘모피아’에 쏟아질 화살을 걱정하며 전전긍긍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팔고 한국을 떠난 지 8년. 지긋지긋한 그 이름, 론스타가 다시 폭탄이 되어 한국 사회를 뒤흔들 판이다.

한애란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