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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진영 지키기를 위한 ‘코드 사면’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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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제 발표한 대통령의 특별사면·복권 조치는 다분히 내년 총선을 의식해 ‘진영 지키기’를 하려는 코드 사면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특히 노동계·시민사회단체들의 사면 요구가 대거 반영됐다. 폭력시위를 주도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킨 게 상징적이다.

폭력사범 한상균, 진보 교육감 곽노현 사면 #“정권연장 위한 촛불청구서 화답” 비판 일어

한 전 위원장은 2015년 11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 맞서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5월 가석방됐다. 당시 쇠파이프·철제 사다리등 시위 도구를 동원한,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폭력 시위로 수십 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농민 백남기씨가 사망하는 참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 전 위원장은 조계사에 은거하며 공권력의 법 집행을 조롱하고 “서울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걸 똑똑히 보여주자”며 총파업 투쟁을 선동했다. 노동자의 권리 행사 차원을 넘어 공권력을 무력화한 폭력 사범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앞선 대통령들의 사면권 남용을 맹비난했다. 반부패·경제사범과 함께 불법 폭력시위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절제를 약속했고 나름대로 원칙을 지켜 왔다. 그러다 갑자기 한 전 위원장에 대한 특사를 발표하니 ‘총선을 의식한 우군 챙기기’란 의심이 나오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는 밀양 송전탑 공사, 제주 해군기지, 사드 배치 관련 사범 등 이른바 ‘7대 사회적 갈등 사건’ 관련자도 함께 특별사면·복권시켜 줬다. 하나같이 이전 정부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진행된 정책과 법 집행을 불법으로 방해한 세력들이다. 사면권이 대통령에게 보장된 헌법적 권한이라곤 하나 공정한 법 집행을 방해한 폭력사범에게까지 죄다 면죄부를 주는 건 수긍하기 어렵다.

진보 교육감으로 꼽혔던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의 특별사면도 ‘진영 지키기 사면’이란 뒷말을 낳는다. 벌써부터 조국 사태와 부동산 정책 등을 둘러싸고 일부 시민단체가 정부에 대해 날선 비판을 했던 점을 의식한 정치적 메시지란 해석들이다. “정권 연장을 위한 촛불청구서에만 화답 중”(자유한국당) “내년 총선을 앞둔 자기 식구 챙기기”(바른미래당)란 비난을 넘겨버릴 일만은 아니다.

이번 사면에 대해 청와대는 ‘노동계의 오랜 요구이자 국민 대통합, 사회 통합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계와 시민사회계의 요구는 수용하면서 경제인의 사면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경제계에서는 기업인의 경영 판단까지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건의해 왔지만 번번이 묵살돼 왔다. 그러니 특정 진영·정파에 치우쳐 형평성을 잃은 사면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