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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마지막 꿈은 ‘노인과 바다’ 같은 영화…윤정희 병석 일어나 상대역 맡았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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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원로배우 신영균이 1999년 제주에 국내 처음으로 세운 영화박물관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뒤로 역대 출연작 사진이 보인다. 김경희 기자

원로배우 신영균이 1999년 제주에 국내 처음으로 세운 영화박물관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뒤로 역대 출연작 사진이 보인다. 김경희 기자

내일이면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다. 한국영화 100주년으로 분주했던 올해도 저물어 간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고향 생각이 간절하다. 38선에 막혀 갈 수 없는 황해도 대신 제2의 고향 제주에서 새해 첫날을 맞을 생각이다.

빨간 마후라, 후회 없이 살았다 - 제132화(7642) #<13> 경자년 새해를 맞으며 #꿈 많던 30대…한 해 31편 촬영 #율 브리너 같은 성격파 배우 동경 #나이 들며 고독한 내면 연기 매력 #윤씨와 마지막 작품 약속했는데…

제주에 가면 꼭 빼놓지 않는 일이 조경이다. 나무를 가꾸는 건 내 오랜 취미이자 일상이다. ‘마적’(1967) 촬영 때 처음 제주를 방문하고 그 풍광에 반했다. 논밭 부지를 사서 동백나무 1000주, 워싱토니아 야자수 200주, 카나리아 야자수 100주 남짓 심었다. 지금은 빽빽해진 나무숲이 마치 "당신은 헛살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2020년 첫 해돋이를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빌어야겠다. “오늘 당장 떠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는 하루를 보내게 해달라”고 말이다. 한 그루 나무를 가꾸는 일, 가족과 마주 앉아 와인잔을 부딪치는 일,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마음껏 보는 일, 그 하나하나가 값지고 소중한 일상이리라.

젊은 시절엔 꿈도 많았다. 1963년 ‘새해의 포부’라는 글을 한 언론사에 기고한 적이 있다. 60년 ‘과부’로 데뷔해 62년 한 해에만 31편을 찍었으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던 시절이었다. 당시 이렇게 썼다.

“남자가 뜻을 세운 다음에야 꼭 그 길에서 대성해야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해가 ‘소성’의 해였다면 올해는 대성의 해가 되기를 간절히 빈다.”

30대 중반의 신영균은 쉽게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대성한 배우가 되기 위해 가장 큰 목표로 삼은 것은 바로 해외 진출이다. 외국어도 열심히 공부해 외국 영화계에서 본받을 점을 우리나라로 들여올 작정이었다.

그 목표에는 1년이 더 지나서야 다가설 수 있었다. 64년 개봉한 ‘빨간 마후라’가 대만·홍콩 등에 수출됐다. 같은 해 홍콩과 합작한 ‘비련의 왕비 달기’는 아시아 21개국에서 동시 개봉했다.

올 한국영화인원로회 송년 모임에 함께한 신영균과 송해. 만 92세 송씨가 한 살 더 많다.

올 한국영화인원로회 송년 모임에 함께한 신영균과 송해. 만 92세 송씨가 한 살 더 많다.

지금 돌아보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시나리오가 좋고 감독과 배우가 훌륭해도 제작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외국 영화를 뛰어넘기 어려운 때였다. 제대로 된 스튜디오 하나 없어 한겨울에 여름 장면을 찍는데 입김 때문에 NG가 나기 일쑤였다.

그 간극을 메운 건 감독·배우·스태프들의 땀방울이다. 당시 배우들은 혹한에도 입에 얼음을 잔뜩 물고 있다가 큐 사인 직전에 얼음을 뱉고 대사를 했다. 입 안과 바깥 온도가 비슷해야 입김이 덜 나기 때문이다. 컴퓨터 그래픽도, 스턴트맨도 없던 시절, 실감 나는 장면 하나를 위해 너나없이 몸을 던졌다.

2007년 발족한 한국영화인원로회(회장 이해룡)가 있다. 충무로 산증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는 모임이다. 나는 원로회 명예회장으로 어려운 영화인을 후원해오고 있다. 지난 19일 송년 모임에서 뜻밖에도 특별공로패를 받았다. 시상자로 무대에 선 후배 양택조씨가 “제가 장가갈 때 주례를 해주신 신 회장님께 제가 상을 주는 날이 다 온다”며 껄껄 웃었다.

충무로의 뿌리인 영화계 원로 중에는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새해에는 우리 정부나 후배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78년 ‘화조’를 끝으로 영화계와 멀어진 이후에도 새해만 되면 꼭 하나 이루고 싶은 게 있다.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노인과 바다’ 같은 영화 한 편을 꼭 남기고 싶다는 소망이다. 한창때에는 ‘왕과 나’의 율 브리너, ‘황야의 7인’의 찰스 브론슨 같은 성격파 배우를 동경했다. ‘광야의 호랑이’(1965)를 찍을 때는 남성미를 강조하려고 부러 가슴에 털을 붙여 보기도 했다.

원로배우 신영균씨가 지난 10월 자신이 직접 심은 야자나무와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희 기자

원로배우 신영균씨가 지난 10월 자신이 직접 심은 야자나무와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희 기자

한해 한해 나이를 먹으면서 기름기 없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스펜서 트레이시의 연기에 매료됐다. 내가 좋아하는 제주 바다에서 고독한 어부의 내면을 표현해보고 싶다. 상대 배우를 꼽으라면 ‘화조’를 함께 찍은 윤정희씨가 떠오른다. 얼마 전만 해도 나만 보면 “영화 한 편 같이 하자”고 노래 부르던 윤씨다. 최근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안타까웠다. 그가 기적처럼 완쾌되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신 회장님, 마지막 작품 함께 찍겠다는 약속 잊지 않으셨죠.”

정리=박정호 논설위원,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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