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가나 「땅 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중학시절 세계사 시간에「면죄부」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리둥절했다.
돈을 받고 죄를 일시 면해준다는 이 말은 돈이 사후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 돈으로 죄를 없앤다는 생각, 미래에 대한 불안을 돈으로 다스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던 중세인들의 어리석음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었다.
이번 추석명절에는 이런저런 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땅 얘기들을 했다. 요즘은 땅을 살 때 가보지도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집을 짓고 이사할 생각도 없고 뭔가를 심어 가꾸겠다는 뜻도 없으면서 그냥 땅을 산다. 조그맣고 하얀 종이조각 하나를 받고는 쉽사리 써버릴 수도 없는 큰돈을 선뜻 내놓는다.
지금 면죄부라는 말은 어린 중학생도 웃어버리는 말이 되었다.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의 못난 표시로 보이기도 하고 사회의 타락상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받아들여 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중세기 사람들은 천국이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면죄부 사기를 열망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땅덩어리를 의미하는 하얀 종이조각(등기권리증)을 더 많이 갖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것을 억제하는 법률이 생겨날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도 신석기시대의 유물인 농경문화 속에 있다는 표시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땅에서 식량을 거두고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신속하게 평면이동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후기 산업사회에 이르면 식품은 고층의 무인공장에서 인공태양으로 생산된다. 기후와 땅의 영향을 떠나서 식생활이 해결된다. 사람들은 비행기나 우주선을 타고 주로 입체이동하면서 살게된다. 지금 갖고 있는 열망이 대상이 바뀌고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때 어떤 어린 중학생이 「토지공개념」이라는 단어를 「면죄부」라는 단어와 똑같은 이상스러운 말이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그것을 이해해 보려고 애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추석명절때 많은 사람들 속에 끼여 앉아서 혼자 생각해 본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