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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레미콘 사장 기사 둔갑···공무원도 아닌 송병기 가명 의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9일 오전 시청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9일 오전 시청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경찰이 송병기(57)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가명 조서에 송 부시장을 레미콘업체 사장의 전 운전기사로 기재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하고 수사를 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경찰이 송 부시장을 참고인으로 조사하면서 고의로 송 부시장의 신분을 속이고 가명 조서를 작성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허위공문서작성 혐의 적용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서 속 송병기, 레미콘 사장 전 운전기사

16일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 김태은)는 송 부시장의 신분이 가명 조서에 사실과 다르게 기재된 정황을 확보하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이 지난 3월 20일 송 부시장을 조사한 뒤 작성한 가명 조서에는 진술자가 ‘김형수(가명)’로 적혀있다고 한다.

경찰은 ‘김형수’라는 가명의 송 부시장을 A레미콘 업체 사장의 전 운전기사인 것처럼 기재했다. A 업체는 김 전 시장 측근인 박기성 전 비서실장에게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당시 경찰 조사 대상에 오른 상황이었다. 당시 송철호 울산시장 후보 선거캠프에 속해있던 송 부시장을 사건의 내부고발자로 포장한 셈이다. 당초 가명 조서엔 송 부시장이 전직 공무원이라 적혀 있다고 알려졌지만 이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경찰은 송 부시장의 가명 조서에 “A레미콘 업체 사장이 진술 사실을 알 경우 조폭을 동원해 위해를 가할 수 있어 가명을 사용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적었다고 한다. 가명으로 조사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하면서도 허위로 작성한 것이다.

경찰 "가명 조서 내용, 확인 불가"

이에 대해 울산경찰청 관계자는 "가명 조서의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6일 오후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 집무실을 압수수색 한 뒤 압수물을 들고 나오고 있다. [뉴스1]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6일 오후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 집무실을 압수수색 한 뒤 압수물을 들고 나오고 있다. [뉴스1]

검찰, '진술 부풀리기·가짜 신분' 의혹 수사 

경찰은 송 부시장의 가명 조서 작성 전인 지난해 1월엔 송 부시장을 면담한 뒤 실명으로 수사보고서를 작성했다. 송 부시장은 실명과 가명 두 차례 모두 김 전 시장 측에 불리한 진술을 내놨다. 검찰은 경찰이 김 전 시장 관련 수사를 밀어붙이기 위해 한 사람의 진술을 두 사람의 것으로 부풀렸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송 부시장의 가명 조서를 작성한 경찰 측에 허위공문서작성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법조계에선 조서는 수사기관이 작성하는 공문서인 만큼 진술자의 신분을 속였다면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법조계 "유례없는 일…허위공문서로 판사 속여"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성범죄 등 보복범죄 우려가 있는 경우 가명 조서를 작성하긴 하지만 진술자의 신분을 아예 허위로 기재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해당 조서를 활용해 영장을 신청했다면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까지 적용 가능한 중한 범죄다”고 했다. 재경지검의 한 간부는 “가명 조서를 본 검사와 판사는 진술자가 송 부시장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했다.

 청와대의 선거개입과 경찰의 하명수사로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에서 낙선하는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15일 오후 참고인 조사를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의 선거개입과 경찰의 하명수사로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에서 낙선하는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15일 오후 참고인 조사를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檢, 무리한 수사 이유 밝힌다…울산 경찰 소환 

검찰은 12일 울산경찰청 수사과장을 지낸 B 총경을 소환한 데 이어 16일 김 전 시장 수사 당시 지능범죄수사대장으로 수사에 관여한 C 경정을 불러 조사했다. 또 김 전 시장 수사에 참여한 경찰 관계자들은 재소환을 통보받고 조사 일정을 잡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이들을 불러 가명 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검찰은 송 부시장이 울산시장 선거를 준비하면서 작성한 선거전략 문건을 확보해 문건 내용이 시행된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특히 수사기관인 경찰이 송 시장의 당선을 위해 개입했는지를 밝히는 게 검찰 수사의 핵심이다. 경찰이 가명 조서를 사실상 허위로 꾸미는 등 수사를 무리하게 몰아붙인 정황이 상당 부분 드러나면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수사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한편 검찰은 울산지검에서 지난해 4월 울산경찰청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얻기 위해 최근 대검찰청과 울산지검을 압수수색했다. 기소 이후 재판단계에서 울산지검이 확보한 증거를 서울중앙지검이 증거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진호 기자, 울산=최은경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알려왔습니다 : 16일 “가명 조서의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던 울산경찰청은 보도가 된 이후인 17일 “A레미콘 업체 사장의 전 운전기사를 가명으로 조사해 조서를 작성했고 이는 송병기 부시장의 가명 조서와는 별개의 것이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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