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표준치료, 먼저 암에 걸린 환자들이 준 선물같은 기록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35)

나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본다. 숫자를 세다 잊어버렸을 정도로 많은 환자가 내 손에서 죽었다. 나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천 번의 밤을 새웠고, 살리지 못해 만 번의 울음을 삼켰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은 때때로 충고를 한다. 환자의 죽음을 돈벌이로 삼지 말라고 한다. 의사로서 최선을 다한 거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묻고 싶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단 하루라도 밤을 지새워본 적 있는가?”

나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천 번의 밤을 새웠고, 살리지 못해 만번의 울음을 삼켰다. [사진 pixabay]

나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천 번의 밤을 새웠고, 살리지 못해 만번의 울음을 삼켰다. [사진 pixabay]

손 쓸 수 없는 환자를 맡으면 속이 바짝바짝 탄다. 의사가 되어 환자가 죽는 걸 지켜만 보다니. 헤어날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진다. 뭐라도 해보고 싶다. 답답한 마음에 때론 기상천외한 방법을 떠올린다. 예를 들면 이렇다. “몸속의 피를 몽땅 밖으로 꺼내서 독소를 한번 걸러낸 후 다시 몸 안에 넣어주면 병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막연한 기대만으로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를 시도하는 일은 없다. 지금은 731부대가 생체실험하는 시대가 아니니까. 환자는 살아있는 사람이고 모든 생명은 중요하다. 누구도 내 몸에 자신의 뇌피셜을 실험할 권리는 없다. 악마가 아니고선.

1. 세상엔 효과가 확실히 입증된 치료가 있다.
2. 어떤 병에는 효과가 있는데, 다른 병에는 어떨지 모르는 치료가 있다.
3. 부작용은 확실히 없지만, 효과 여부가 아직 아리송한 치료도 있다.
4. 효과는 둘째치고 부작용 여부를 알 수 없는 치료도 있다. 병을 치료하기 전에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
5. 이제 겨우 쥐 실험 단계의 치료도 있다. 당연히 사람에겐 어떨지 모른다. 다만 확실히 쥐는 몇 마리 더 살리더라.
6. 환자를 보다 보면, 경험상 이러면 어떨까 하는 영감이 떠오를 때가 있다. 물론 아직 쥐 실험조차 해 본 적 없다.
7. 책을 보다 보면, 이론상 왠지 환자를 낫게 할 거 같은 치료도 있다. 역시나 아직 쥐조차 안 잡아봤다.

나는 주로 6, 7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다. 하지만 나 같은 의사들의 아이디어는 99.999% 사장된다. 3, 4조차 99% 실패한다. 연구해보니 기대했던 효과가 안 나와서, 혹은 독성이 너무 커 초가삼간 다 태워서. 결국 환자에게 쓰이는 건 0.1%도 채 안 되고, 그 과정에는 5~6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도 실험에 쓰여서는 안 된다. 남은 생이 단 하루뿐인 사람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그 하루는 남은 인생의 전부이기에. [사진 pixabay]

인간은 누구도 실험에 쓰여서는 안 된다. 남은 생이 단 하루뿐인 사람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그 하루는 남은 인생의 전부이기에. [사진 pixabay]

이렇게 연구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환자한테 실험할 수가 없어서다. 생체실험은 과거 나치나 가능했다. 감히 사람을 대상으로 그런 짓을? 용서받지 못할 패륜이다. 인류 역사가 기억하는 한 영원히 욕을 먹어도 부족하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도 실험에 쓰여서는 안 된다. 설령 남은 생이 단 하루뿐인 사람일지라도 이는 마찬가지다. 그에게 그 하루는 남은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충제를 암 환자에게 쓴다고 들었다. 구충제는 6, 7번 수준의 치료제다. 세상엔 1도 있고, 아쉽지만 2에 해당하는 치료도 있다. 구충제보다 많이 연구되었지만, 감히 환자에게 사용 못 하는 3, 4, 5도 많이 있다. 그런데 6, 7을 사용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환자들에게 내 뇌피셜 가득한 새로운 6, 7을 실험해봐도 될까? 어차피 가망 없는 환자라면 뭐든 맘대로 해봐도 괜찮은 걸까?

혹자는 환자 본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의사인 내가 환자들에게, 혹시나 나을지도 모른다며 헛된 희망을 팔고, 거기에 혹한 사람들의 동의를 받으면 내 맘대로 약을 써봐도 될까?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면 그들을 모아 생체실험을 해도 되는 걸까? 본인이 동의했으니 상관없을까?

결코 누군가에게 막연하게, 쉽게, 무책임하게 조언해선 안 된다. 사람 목숨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결코 누군가에게 막연하게, 쉽게, 무책임하게 조언해선 안 된다. 사람 목숨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펜벤다졸은 동물 수준의 논문 몇 개가 전부다. 반면 암에 대한 연구는 오늘을 기준으로 330만 개나 된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것만도 300만 개가 넘는다. 그 많은 연구 중에 고르고 또 고른 게 현재의 치료법이다. 교과서에 실려있고 전 세계의 모든 의사가 선택하는 방법. 그게 바로 병원에서 하는 표준 치료다.

이 치료법은 사람을 모르모트로 한 실험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먼저 암에 걸렸던 환자들이 죽어간 기록이다. 때론 살아남은 기록이다. 그렇게 한 명이 가고 두 명이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난 길이다. 즉, 수많은 환자의 목숨으로 쌓아 올린 계단이다. 수천만 환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모으고 또 모은 지식이다. 그게 바로 표준 치료다. 이게 하찮아 보이는가?

나는 지금 환자의 목숨을 얘기하고 있다. 이것은 한 인간의 생명이 달린 일이다. 결코 누군가가 막연하게, 쉽게, 무책임하게 조언해선 안 된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을 알려 주어야 한다. 효과가 어떨지 부작용이 어떨지 제대로 연구도 안 된 치료법을 함부로 추천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 목숨은 결코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