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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마블링 신화의 불편한 진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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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호 31면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1일부터 소고기 등급 기준이 달라졌다. 개편안의 핵심은 한우의 5가지 육질 등급(1++, 1+, 1, 2, 3)에서 최상위인 1++ 등급을 받을 수 있는 지방 함량 기준을 기존 17% 이상에서 15.6% 이상으로 낮추는 것이다. 6개월의 계도 기간을 거쳐 개편안이 본격 시행되면 1++ 한우 비율은 12.2%에서 20%대로 늘어나고, 1+ 비율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소고기 등급제 개편에 우려 목소리 #마블링 중시해 생긴 부작용 줄여야

농림축산식품부가 밝힌 소고기 등급 기준 개편 배경은 ‘1++ 등급을 만들기 위해 소를 오래 사육해야 하는 농가의 부담을 덜고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농림부 설명에 나오는 두 가지 내용은 모두 ‘마블링(소의 근육 사이에 지방이 침착한 정도인 근내 지방도)’과 직결돼 있다. 마블링 예찬론자들은 선홍빛 소고기에 눈꽃처럼 하얗게 촘촘히 박힌 마블링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마블링이 적당히 있어야 맛·육질·육즙 등의 품질이 뛰어나다는 찬사도 덧붙여서.

마블링 무용론자들은 정반대 입장이다. 마블링은 기름 덩어리일 뿐이며 상온에서 하얀색을 띠는 포화지방으로, 과다 섭취하면 지방간 위험을 높이고 심혈관계 질환과 비만을 유발한다고 경고한다. 마블링이 뭐라고 기름기 많은 소고기를, 그것도 비싼 값에 사 먹어야 하나며 불만이다. 마블링 때문에 옥수수 등 수입산 사료를 먹여가며 적정 사육 기간인 20~24개월을 넘겨 소를 키우기 일쑤라 소고기 가격이 오른 것 아니냐는 논리다. 아닌 게 아니라 농림부에서도 이번 소고기 등급 기준 변경으로 국내 소 사육 기간이 평균 31.2개월에서 29개월로 줄어 마리당 44만6000원가량의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평균 소 사육 기간은 일본(29개월)·미국(22개월)보다 길다.

어느 먹거리든 각자의 취향이나 선호의 문제라 왈가왈부 하긴 애매하지만 제도 탓에 파생된 문제라면 얘기가 다르다. 사실 수입산 옥수수 먹여가며 소를 살찌워 봤자 마블링은 주로 소 한마리에서 10%에 불과한 등심 부위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다른 부위에는 지방이 잘 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소고기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미국·일본·호주 중 미국과 호주는 잣대가 느슨한 편이다. 호주는 수출용에만 등급을 매긴다. 미국에서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이와 달리 국내에서는 무조건 등급을 표기해야 한다.

정부는 애초 축산물 수입 자유화에 대비, 한우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1993년 등급제를 시행했고, 2004년 제도를 개편했다. 그동안 한우 소비량이 늘었지만 마블링 덕분만은 아닌 듯하다. 2003년까지 급증하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광우병 파동으로 주춤한 사이 반사이익을 본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 들어 10월까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크게 늘었다. 관세율 인하에 따른 가격 하락과 ‘미국산 소고기=광우병’이란 인식이 사라진 영향이다.

최근 대형마트 온라인몰 기준으로 한우 등심 구이용 1등급 가격은 100g당 9634원이지만, 미국산 등심 구이용은 3975원에 불과했다. 맛도 중요하지만 요즘 같은 불황에 가격도 무시 못할 구매 요인이다. 이런 가운데 바뀐 등급제 탓에 “1+ 등급 소고기를 더 비싼 1++ 값에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농림부는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소고기 포장에 마블링 정도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는 방법으로 유통 업체가 폭리를 챙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가가 등급제를 포기하고 민간 자율로 실시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다만 아무리 오랜 경험과 고민 끝에 만든 등급제라도 거기서 파생되는 부작용이 많다면 소 잃은 후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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