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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방법으로 中먹칠" 왕이, 오늘은 정·재계 앞서 美 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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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청와대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문재인대통령 접견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5일 오후 청와대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문재인대통령 접견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방한 이틀째인 5일에도 ‘미국 때리기’를 계속했다.
왕 위원은 이날 낮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정ㆍ재계와 학계 인사 등 6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오찬회 연설에서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려는 이들의 의도는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왕 위원은 중국의 발전상을 언급한 뒤 “모든 사람이 중국의 성공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처럼 말했다.

그는 “온갖 방법을 써가며 중국에 먹칠을 하고 발전 전망을 일부러 나쁘게 말하며 중국을 억제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배후에는 이데올로기적인 편견도 있고 강권정치의 오만도 있다”며 “냉전적 사고방식은 진작에 시대에 뒤떨어졌고, 패권주의 행위는 인심을 얻을 수 없다. 중국의 부흥은 역사의 필연이고 중국의 발전 도로는 갈수록 넓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역 분쟁뿐 아니라 홍콩 사태 등으로 중국을 연일 압박하는 미국을 겨냥한 듯한 발언이었다.

“일방주의? 트럼프 트위터 보라”

왕 위원은 “일방주의, 패권주의, 강권 조치가 넘치고 있는데 이는 지역 세계 및 평화 안정과 우리의 정당한 발전 권리에 위협”이라고도 했다. 전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비판을 이날은 한국 민간 분야 인사들에 앞에서 반복한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 외교부를 예방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에 들어서고 있다왕이 부장은 지난 2016년 사드 배치로 한중 갈등이 불거진 이후 처음으로 방한했다. 김상선 기자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 외교부를 예방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에 들어서고 있다왕이 부장은 지난 2016년 사드 배치로 한중 갈등이 불거진 이후 처음으로 방한했다. 김상선 기자

이와 관련, 왕 위원은 연설 뒤 기자들과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패권주의에 대한 생각을 묻자 “(트럼프)대통령의 트위터에서 매일 관찰할 수 있다. 그게 매일 공론화되고 있다. 그것을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한 한ㆍ중 간 갈등에 대해선 “사드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서 만든 것으로, 미국이 만든 문제”라며 “미국이 이를 한국에 배치해 한ㆍ중 관계에 영향을 줬다”고 했다. 미국이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그것은 미국에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100년 전 애국 운동” 항일 공통분모 내세워  

왕 위원은 연설에서 한국을 끌어당기려는 의도도 숨기지 않았다. “100년 전 두 나라 국민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국가를 멸망으로부터 구하고 민족의 생존을 도모하는 애국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중국의 5ㆍ4  운동, 한국의 3ㆍ1 운동과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의 수립”이라며 항일 독립운동이라는 공통분모를 강조했다.
그는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중요한 전략적 소통을 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한ㆍ중 관계 발전을 위한 세 가지 희망 사항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상호 신뢰관계 구축 ▶더 수준 높은 (양자)협력의 실현 ▶더 높은 수준의 다자 협력 등이었다.
그러면서 왕 위원은 중국 일대일로 전략과 한국 신남방 정책 간 연계 강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조속한 서명 추진 등을 예로 들었다.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 견제와 직결되는 이슈들이다.

“다자주의 기치 함께 들자” 대미 공동대응 요청

특히 왕 위원은 다자 협력 강화를 언급하며 “보호주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에서 양측은 소통과 조율을 강화하고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미국의 일방주의에 함께 맞서자는 요청으로 볼 수 있다.
또 “중국은 시종일관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장기적인 파트너”라며 “지난해 양국 간 교역액이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양국이 이미 이익 공동체가 됐고, 다자주의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과 비교되는 한ㆍ중 간 공통점처럼 부각했다.
하지만 이는 사드 문제로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한 중국이 할 말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날 오찬회에는 사드 보복의 주타깃이었던 롯데그룹 관계자도 참석했다. 더군다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사태 이후 한ㆍ미 간 신뢰관계가 훼손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한국은 중국이 내민 손을 덥석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발표엔 ‘일방주의’ 빠져

이처럼 밀고당기기 중인 양국 간 입장 차이는 전날 한ㆍ중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알리는 양국 외교부의 보도자료에서도 드러났다. 한국 측 발표에는 일방주의나 패권주의라는 단어도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측은 왕 위원의 관련 발언을 소개한 데 이어 “강 장관은 한국이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다자주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했다. 원칙적 입장이지만, 언뜻 보면 강 장관이 일방주의를 비판하는 왕 위원 주장에 동의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청와대에서 예방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청와대에서 예방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한국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을 논의했다. 양 장관은 한ㆍ중 간 정상 교류가 양국 관계에서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고 했는데, 중국 발표에는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한 내용이 없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5일 “어제 장관 회담에서 우리 측이 시 주석의 국빈 방한을 초청하고 조기에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한 데 대해 중국 측은 내년 상반기에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유지혜ㆍ이유정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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