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좋아하던 트럼프, 홍콩인권법은 '골방'서 서명…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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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무역협상을 맡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류허 중국 부총리.[AFP=연합뉴스]

미국과 중국 무역협상을 맡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류허 중국 부총리.[AFP=연합뉴스]

중국 정부의 거듭된 '경고'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홍콩 인권법안에 서명하자 미·중 무역합의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의 홍콩 인권법은 미·중 무역합의를 탈선시킬까? 미국과 중국 전문가들의 대답은 대체로 '아니오'로 모인다.

추수감사절 휴일 뉴욕증시 휴장 #중 "미국, 법 집행 안 하면 #미·중 관계 영향 없어" 메시지 #트럼프, 법 집행 안 할 것 시사 #중국 심기 안 건드리려 최대 노력 #관객·카메라 없이 '골방'에서 서명 #"미·중 무역과 정치 문제 분리 노력"

트럼프가 홍콩 인권법에 서명한 다음 날인 28일(현지시간)은 추수감사절 휴일이어서 뉴욕증시는 열리지 않았다. 금융시장 반응은 즉각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 언론은 다각도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8일(현지시간) "중국은 홍콩 문제에 대해 미국을 비난했지만, 그것이 무역협상을 멈추게 하진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를 3일 만에 또 초치해 보복을 예고했지만, 의미 있게 미국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선택지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위협이 공허하게 들린다고 전했다. 30년 만에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중국은 무역합의 타결로 무역에 숨통을 틔우는 게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중국 외교부가 전면에 나서 미국을 맹렬히 비난할 때 무역협상을 담당하는 중국 상무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홍콩 인권법에 대해 침묵했다는 점을 들었다. 중국이 무역협상을 계속할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런던 SOAS 중국연구소의 스티브 창 소장은 NYT에 "중국은 많은 잡음을 만들어 내겠지만 오래 할 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라면서 "무역합의는 중국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걸 잘못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겅솽 외교부 대변인 발언에도 주목했다. 강한 표현을 쓰며 미국을 비난하는 와중에 겅 대변인은 무역합의에 대한 질문을 받고 "미국은 미·중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홍콩 인권)법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이 홍콩 인권법을 실제로 집행하지 않으면 무역합의를 비롯한 미·중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경제 정책 담당 관료들을 인용해 미국 대통령이 홍콩 인권법상 조치를 집행하지 않는 이상 중국은 무역합의를 추진할 강한 동기가 있다고 전했다.

미국도 앞서 중국에 메시지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안 서명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이 법의 특정 조항은 미국 외교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 행사를 방해한다"고 밝혔다.

이어 "내 행정부는 법 조항을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에 따른 외교정책과 일치하도록 취급하겠다"고 밝혔다. 어떤 부분이 헌법상 권한과 배치되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았지만, 법 집행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대통령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준다. 홍콩에서 인권 침해가 일어났는지 판단하고, 이를 자행한 홍콩 또는 중국 관리를 특정(identify)하고 그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입국을 거부하는 주체가 모두 대통령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 인권법에 서명하면서 의원들과 언론을 부르지 않고 '독방'에서 홀로 조용히 서명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통상적으로 미국 대통령은 법안에 서명할 때 발의한 의원들과 법의 혜택을 받는 일반 시민을 백악관으로 초대하고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하는데, 홍콩 인권법은 이런 기록을 안 남겼다. 중국을 의식한 행보라고 미국 언론은 보고 있다.

왕용 베이징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홍콩 인권법이 분위기를 망친 건 사실이지만 무역협상을 간섭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양측 모두 무역 문제와 홍콩과 정치 이슈를 분리해 다룰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앞서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무역협상이 결렬되지 않았다는 점도 근거로 꼽힌다. 중국 통신기업 화웨이 창업자의 딸이자 고위 임원인 멍완저우가 체포됐을 때도 중국은 강한 비난을 했지만, 협상은 계속됐다.

미국이 인권 위반을 들어 중국 기업에 대해 제재를 했을 때도, 국무부가 중국 정부의 신장 위구르 소수민족 100만 명 탄압을 지적하며 당장 시정하라고 요구했을 때도 협상은 이어졌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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