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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리' 중국계 앵커 내세우자…중국 '금발앵커'로 반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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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美·中 글로벌 방송전쟁…상대국 언어로 공격

미국 정부 지원을 받는 미국의 소리(VOA)의 중국어 방송. 중국계 앵커가 중국어 음성과 자막으로 진행해 중국 방송으로 느껴진다. 이 방송은 지난 25일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의 압승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VOA중문판 유튜브 캡처]

미국 정부 지원을 받는 미국의 소리(VOA)의 중국어 방송. 중국계 앵커가 중국어 음성과 자막으로 진행해 중국 방송으로 느껴진다. 이 방송은 지난 25일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의 압승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VOA중문판 유튜브 캡처]

#자막과 음성이 중국어로 나온다. 진행을 맡은 앵커도 중국계다. 이 방송은 지난 25일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하고 친중파가 참패했다는 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 23일 중국 국영 영어 TV 채널 CGTN의 방송 장면. 서구 앵커가 영어로 진행한다.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도발 행위를 비난하는 중국 정부의 발표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CGTN 유튜브 캡처]

지난 23일 중국 국영 영어 TV 채널 CGTN의 방송 장면. 서구 앵커가 영어로 진행한다.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도발 행위를 비난하는 중국 정부의 발표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CGTN 유튜브 캡처]

#금발의 서구 앵커가 영어 자막과 음성으로 진행한다. 이 방송에선 지난 23일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도발 행위를 비난하는 중국 정부의 발표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홍콩 시위대의 폭력 행위로 인한 시민 피해를 부각하는 동영상도 만들었다.

두 방송의 국적은 어디일까. 전자가 미국, 후자가 중국이다. 반대일 것 같지만 중국 같은 방송이 미국발, 미국 같은 방송이 중국 발이다. 정확한 소속은 ‘미국의 소리(VOA)’의 중국어판과 중국 국영 영어방송 CGTN이다. 미국과 중국이 방송 분야에서도 글로벌 경쟁에 돌입한 현장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어 방송 뉴스, 중국 정부는 영어 방송 뉴스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중 양국이 상대 국가의 언어로 서로를 겨냥하는 모양새다. 세계 패권을 놓고 경제·군사·외교 등에서 경쟁 중인 미국과 중국의 전선에 또 하나가 추가된 셈이다.

미국, '글로벌 만다린' 방송 설립 추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5일 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이 ‘글로벌 만다린’이란 새로운 디지털 방송 네트워크를 만드는 계획을 공동으로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두 방송은 미국의 입장을 전세계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2017년부터 연방정부 산하 기구인 미 글로벌미디어국(USAGM)이 운영하고 있다. VOA는 미국 외교의 심장부인 국무부 등 당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中 젊은이 겨냥 연성콘텐트 육성

미국 정부 지원을 받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중국어 방송 홈페이지. [VOA중국어판 홈페이지 캡처]

미국 정부 지원을 받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중국어 방송 홈페이지. [VOA중국어판 홈페이지 캡처]

SCMP에 따르면 VOA와 RFA는 중국어 디지털 브랜드를 단계적으로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연간 예산은 500만(약 60억원)~1000만 달러이며, 향후 인상될 수 있다. VOA가 지난 9월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메모에선 디지털 네트워크가 방송 채널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방송, 동영상 채널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24시간 내내 중국어로 전 세계에 뉴스 및 정보를 전달할 예정이다. 기존에 있던 VOA 중국어판 등 중국어 채널을 통합한 업그레이드 버전이 될 전망이다.

특히 중국어권 젊은이를 겨냥해 뉴스뿐 아니라 연성 콘텐트 제작에도 힘쓰기로 했다. USAGM이 지난 21일 공개한 연간 현황에 따르면 VOA와 RFA의 주간 시청·청취층에서 중국어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6.2%다. 인구로는 6500만명으로 향후에도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영어 방송 집중 투자…영향력 확대 중

중국 국영 영어 TV 채널 CGTN의 홈페이지.[CGTN 홈페이지 캡처]

중국 국영 영어 TV 채널 CGTN의 홈페이지.[CGTN 홈페이지 캡처]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중국의 글로벌 방송전략에 대한 맞대응이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다양한 영어 방송 채널을 만들어 전 세계에 자국 정부의 이념을 전파 중이다. 중국 국영 CCTV는 지난 2016년 영어 뉴스 채널을 '중국 글로벌TV네트워크(CGTN)'로 이름을 바꿨다. 기존에 있던 미국·아프리카 본부를 강화하고, 지난해 6월엔 런던에 유럽 본부도 세웠다. 현지 인력을 대거 영입하며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현재 100개국 8500만명이 시청 중이다.

지난해 3월에는 VOA와 이름이 유사한 ‘중국의 소리’를 출범시켰다. 중국의 소리는 CCTV, 중국 국제 라디오TV 방송국, 중국 국가 라디오TV 방송국이 통합한 영어 라디오 방송 채널이다. CGTN과 중국의 소리는 최근 홍콩 민주화 시위 사태에서 중국 정부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했다.

美 "중국 국영미디어 대안으로 중국어 방송 추진"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중국어 방송. 중국어와 한자로 진행해 미국 방송으로 느껴지지 않는다.[VOA중국어판 유튜브 캡처]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중국어 방송. 중국어와 한자로 진행해 미국 방송으로 느껴지지 않는다.[VOA중국어판 유튜브 캡처]

이런 중국의 움직임에 미국은 중국어 방송 전략으로 중화권 인구 공략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지난 9월 VOA가 직원들에게 보낸 문서에선 새로 만들 중국어 디지털 브랜드를 “중화인민공화국이 내세우는 이념과 가치, 잘못된 정보를 홍보하는 국영미디어에 대한 대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창과 방패 싸움…중국 방화벽 뚫을지 의문

중국 국영 영어 TV 채널 CGTN의 페이스북 계정. 중국 정부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자국에서는 자유롭게 유통되지 않는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해 정부 방침을 홍보하고 있다.[CGTN 페이스북 캡처]

중국 국영 영어 TV 채널 CGTN의 페이스북 계정. 중국 정부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자국에서는 자유롭게 유통되지 않는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해 정부 방침을 홍보하고 있다.[CGTN 페이스북 캡처]

미·중 양국의 글로벌 방송 경쟁은 창과 방패의 싸움이 되고 있다. 중국의 영어 방송은 TV뿐 아니라 유튜브·페이스북·트위터 등 다양한 SNS를 활용해 콘텐트를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들 플랫폼을 중국에서 활용하기 어렵다. 중국 정부의 통제와 검열로 이용이 자유롭지 않아서다. 이러면 콘텐트를 만들어도 핵심 타깃인 중국 젊은이들에겐 전파하는게 어렵다. 이에 USAGM은 서버 우회 또는 P2P 기술 등의 대안을 모색 중이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SCMP는 “VOA와 RFA의 새로운 중국어 네트워크는 중국 정부의 방화벽을 뚫을 방법이 확실치 않다"며 "중국 정부의 견제 속에 중국어 인력을 대거 확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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