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정은 “남측 시설 싹 들어내라”던 장전항 해군기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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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객이 드나들던 장전항을 북한이 군사기지로 활용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북한은 관광이 시작된 1998년 11월 이후 장전항에 있던 잠수함과 함정을 후방지역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2년 뒤인 2010년 4월 구글 어스 위성 사진엔 북한 함정이 등장했다. [사진 구글 어스 캡처]

금강산 관광객이 드나들던 장전항을 북한이 군사기지로 활용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북한은 관광이 시작된 1998년 11월 이후 장전항에 있던 잠수함과 함정을 후방지역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2년 뒤인 2010년 4월 구글 어스 위성 사진엔 북한 함정이 등장했다. [사진 구글 어스 캡처]

지난해 8월 촬영된 위성사진에는 바다로 향한 채 부두에 정박해 있는 대형 함정의 숫자가 대거 늘고(왼쪽 원 안), 해군 함정의 수리를 위한 ‘상가’(함정을 들어올려 수리하는 육상 시설·오른쪽 위)와 군 막사 또는 행정 시설로 추정되는 건물(오른쪽 아래)을 신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구글 어스 캡처]

지난해 8월 촬영된 위성사진에는 바다로 향한 채 부두에 정박해 있는 대형 함정의 숫자가 대거 늘고(왼쪽 원 안), 해군 함정의 수리를 위한 ‘상가’(함정을 들어올려 수리하는 육상 시설·오른쪽 위)와 군 막사 또는 행정 시설로 추정되는 건물(오른쪽 아래)을 신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구글 어스 캡처]

북한이 금강산 관광 때 남측 유람선을 받았던 장전항(고성항)에 군사 시설을 건설하고 함정을 배치하며 다시 해군 군항으로 사용하고 있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북한 잠수함 등의 전방기지 역할을 했던 장전항은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후 군항 기능을 중단했던 곳이다.

함정 수척 배치, 수리시설도 설치 #98년 금강산 관광 이후 후방 옮겨

정부 당국자는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3일 금강산 지역 내 남측 시설물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지만 이 지시에 앞서 이미 후방으로 물렸던 함정을 장전항에 다시 전진배치하고 있고, 관광용 유람선 정박을 위해 건설했던 부두 건너편엔 상가(上架·함정을 들어올려 수리하는 육상 시설)까지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간혹 공기부양정과 잠수함이 장전항에서 목격된 적이 있었지만 2~3년 전부턴 아예 장전항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함정을 사실상 상시 배치하는 움직임이 있다”고도 밝혔다.

본지가 위성 사진 제공업체인 구글 어스의 사진을 분석한 결과 2018년 8월의 경우 장전항의 함정용 부두에는 2010년에는 없던 건물이 지어져 있고, 육상에는 ‘상가’를 설치해 여러 척의 함정을 올려놓았다. 또 수척의 대형 함정을 부두에 정박시켜 놓았는데, 함정의 앞부분(함수)을 바다 쪽으로 향하도록 해 긴급 출동에 대비하는 방식으로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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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해군 장성은 “일반적으로 함정을 부두에 정박시킬 때는 배의 옆부분이 부두에 닿도록 하고, 그 옆으로 함정을 여러 척 겹쳐 정박시킨다”며 “그러나 긴급 출항이 필요한 기지에선 함정이 곧바로 바다로 출항할 수 있도록 함정의 앞부분을 바다 쪽으로 향하게 했다”고 말했다.

장전항, 금강산 관광 전엔 잠수함기지

그는 "장전항의 함정들은 모두 긴급 출항 형태로 돼 있는 점은 북한이 이 지역을 최전방 해군기지로 다시 전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북한, 장전항 다시 해군기지화 나서.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북한, 장전항 다시 해군기지화 나서.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금강산 관광의 주관사인 현대는 초창기 관광객 운송을 위해 동해(속초)~장전항 항로에 최대 4척의 유람선을 투입했고, 유람선 정박을 위해 북한의 해군기지 건너편에 부두와 출입사무소 시설을 건설했다.

당시 북한은 각종 함정과 시설 노출을 우려해 장전항 북쪽 7㎞(직선거리) 후방의 남애항 등으로 전력을 옮겼다. 장전항에는 보초 병력 정도만 남겨뒀다.

북한은 남겨둔 시설물을 관광객이 촬영할 경우에 1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2008년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 총격으로 피살됐던 곳이 장전항 인근이다.

잠수함 전단장을 지낸 문근식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은 “장전항은 해상 북방한계선에서 10여㎞ 떨어진 군사적 요충지여서 북한은 그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기 전 장전항을 잠수함의 전진기지로 사용해 왔다”고 설명했다.

당국은 북한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더라도 원산 공항을 사용하되 장전항에 더는 유람선이 드나들지 않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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