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톤산혈증>
언제나처럼 혼잡한 진료 실을 나와 뒤늦은 점심을 대강 끝내고 막연 구실로 가던 중 응급실에서 부르는 삐비(무선호출기)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급히 응급실로 내려가 보니 60대 후반의 할머니 한 분이 한구석에서 산소 카테타를 코에 꽂은 채 혼수상태에 빠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할머니는 사흘 전부터 감기증상을 보이더니 기침·가래가 많아지고 고열·호흡곤란이 생겼다고 했다.
하루 전부터 왼쪽가슴에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의식을 점차 잃어 응급실로 옮겨졌다는 것이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아들의 얘기였다.
10년 전부터 당뇨병이 있었으나 간혹 약을 복용하는 것 외에 별 치료 없이 지내왔다고 말했다.
혈압은 80/50mmHg로 저혈압, 맥박은 1분당 1백28회로 빨랐고 체온은 섭씨38도로 높았다.
호흡은 깊고 빨라 헐떡거리고 탈수가 심해 혀는 거친 옷감과 같은 촉감이었으며 왼쪽가슴 부위에서 심한 잡음이 들렸다. 응급 검사결과 요당과 요아세톤은 강산성이었고 혈액가스검사는 심한 대사성 산혈증 소견을 보였다.
흉부X레이는 왼쪽 폐 거의 전부가 폐렴으로 나타났다.
이를 종합해보니 당뇨병 성 케톤산헐증으로 인한 당뇨병 성 혼수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당뇨병 성 케톤산혈증은 당뇨병을 치료하지 않거나 치료를 갑자기 중단한 경우, 또는 폐렴등의 감염증, 심근경색증, 심한 외상 등으로 신체에 심한 스트레스가 가해 질 때 잘 발생한다. 이 경우 당뇨병이 급속히 악화되어 인슐린의 부족과 그 기능장애가 더 심해져 고혈당증도 덩달아 심해지고 이로 인해 삼투압 성 이뇨 작용 등이 발생, 다량의 수분·전해질이 배설돼 탈수상태에 빠진다.
또 조직의 지방분해가 증가돼 많은 양의 지방산이 유리되고 이것이 간에서 케톤체(예:아
세톤)로 전환, 케톤산증이 발생하며 심한 경우 혼수상태 에 빠지게 된다.
이때 치료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혈당조절과 탈수상태의 교정을 위한 인슐린주사와 수액 (링게르)공급 요법이다. 당뇨병 성케톤산혈증은 응급처치를 요하는데 즉각 치료해도 5%정도는 숨진다. 더구나 치료가 너무 늦어지거나 원칙적인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경우엔 사망률이 30 % 이상에 달한다.
할머니에게 즉시 인슐린(속효형)15단위를 정맥 주사하고 시간당 6∼10단위가 주입되도록 자동주입기를 작동시켰다. 동시에 생리적 식염수를 빠른 속도로 정맥주입 하기 시작하고 다량의 항생제를 투여한 뒤 중환자 실로 옮겼다.
할머니는 만 24시간에 걸친 치료 후 의식을 되찾았으며 약2개월간 더 입원치료를 받고 건강한 상태로 퇴원했다.
며칠 전 그 할머니는 외아들과 함께 활짝 웃는 얼굴로 진찰실을 찾아왔다.
젊은이의 손에는 할머니의 퇴원 후 혈당기록을 상세히 적은 큰 수첩이 들려있었다. 젊은이는 빨리 결혼해 아내와 둘이서 외로운 어머니의 당뇨병 조절에 힘쓰겠다며 노인의 어깨를 감싸안는 흐뭇한 광경을 보여주었다.케톤산혈증>
(43)당뇨병 방치하면 발병…사망위험 커-손호영<가톨릭의대 교수·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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