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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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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S고3년 박 모군 (18) 은 최근 TV가정학습 (TV과외) 시청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 둘 것인가를 놓고 마치 햄릿처럼 심각한 고민에 잠겨있다.
반에서 20∼30위 권의 성적인 박 군은 특히 「도구과목」 인 영어와 수학에서 부진했기 때문에 지난 4월17일 TV과외가 시작되자 내심 쾌재를 불렀다.
평소 과외를 하고싶은 욕심이 간절했으나 구청의 말단공무원인 아버지 (47) 의 빠듯한 수입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박 군의 처지로서는 TV과외는 마치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박 군은 차츰 TV과외에 흥미를 잃어갔다. 우선 수학의 경우 강의수준이 너무 높고 강사들의 강의진행도 내용을 이해하건 말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게다가 정규수업·보충수업·자율학습이 끝나고 늦게 귀가하자마자 바로 TV앞에 두 시간 씩 매달리는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피곤했다.
소비하는 시간만큼 큰 학습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판단한 박 군은 TV과외 시청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최근 문교부가『TV과외를 시청하면 대입에 도움이 될 것』 이라고 한 말도 떠오르고 「그래도 안보는 것보다는 나을 것」 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있는 중이다.
경남산청에 있는 D고3년 송 모군 (17) 의 경우는 박 군과는 또 다르다. 우등생 축에 드는 송 군은 TV과외가 수험준비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산간지역에 거주하는 탓으로 TV수신상태가 나쁘다. 난시청지역학생들은 잘 보이지 않거나 아예 시청을 못하는 2중 피해를 보는 셈이다.
송 군은 궁여지책으로 녹화용 테이프를 구입, 진주에 사는 이모집 VTR로 TV과외를 녹화,매주 토요일 한꺼번에 가져와 새벽에 틀어놓고 시청하고 있다.
과외를 받을 수 없는 형편의 저소득층 학생들과 교육환경이 낙후된 시골학생들에게 학습보충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적에서 지난 4월17일부터 시행된 TV과외.
현재 KBS 3TV채널을 통해 매일 밤 10시10분부터 1백2O분 동안 실업·제2외국어를 제외한 학력고사 전과목을 대상으로 1교시는 국·영·수 가운데 하나, 2∼3교시는 암기과목을 강의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주된 시청대상은 고교3년 생 TV과외는 그러나 첫 방송 이후 6개월을 지나는 동안 많은 역효과를 낳고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강사가 학원의 유명강사나 특별강사가 아닌 서울의 세칭 일류교사들로 이들 교사들의 「명강의」를 듣는 지방학생들이 자기학교 교사와 비교하는 점. 그래서 일부 지방에서는 TV과외 이후 『우리학교 교사들의 실력이 형편없는 것이 아니냐』 고 교사를 우습게 여기는 풍조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TV과외 강의내용이 대입에 반영될 것이라는 문교부 발표에 대해 『가뜩이나 무너져 가는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처사』 라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독서실· 고시학원 등에서 TV과외를 놓고 다시 그룹과외를 하는 2중 탈법과외까지 조장, 「과외가 과외를 낳는」 것도 문제다.
서울P고 3년 최 모군 (17) 은『TV과외가 과외를 안 해도 되는 암기과목까지 하다보니 과외가 정말 필요한 영·수·국 과목에는 시간배정이 적어 별 도움이 안돼 2학기 들어 TV시청은 그만뒀지만 대입에 반영될 것에 대비, 교재는 모두 구입해 틈나는 대로 보고있다』 고 말했다.
마산M고 3학년 주임 교사인 윤 모교사 (49) 는『TV과외는 매체의 특성상 기억이 오래가지 않는 데다 방영시간대가 너무 늦어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청 후 바로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학습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어 방영시간조정이 아쉽다』 고 했다.
이러한 요인 때문인지 서울·지방 모두 시청률은 갈수록 떨어져 방영초기만 해도 70%에 가까웠으나 최근 들어서는 절반정도로 떨어져 시들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시명문인 광주K여고는 이에 따라 당초 3학년 학생들에게 TV과외 시청을 위해 방영시간 이전에 귀가를 시켰으나 9월부터는 시청 희망자는 녹화테이프를 이용토록 하고 전원 밤11시까지 자율학습을 시키는 것으로 환원했다.
서울중대부고의 진학담당 박내창 교사(52) 는 『TV과외의 강사진이 서울시내 일부 공립 고 교사들로만 구성되어있고 TV화면과 교재에 강사 이름을 넣어 다른 교사들로부터 반발이 크다』 고 지적하고 『강의과목이 너무 많아 학생들의 부담이 크므로 과목을 대폭 축소하고 학생들의 시청편의를 위해 휴일에 재방영할 필요가 있다』 고 했다. <김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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