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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벤투호 ‘레바논 쇼크’ 반복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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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2011년 레바논 원정경기에서 1-2로 지고 귀국한 조광래 당시 대표팀 감독이 인천공항에서 취재진의 질문 공세를 받는 모습. [중앙포토]

2011년 레바논 원정경기에서 1-2로 지고 귀국한 조광래 당시 대표팀 감독이 인천공항에서 취재진의 질문 공세를 받는 모습. [중앙포토]

8년 전인 2011년 11월15일. 레바논 베이루트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 원정경기에서 한국은 레바논에 1-2로 졌다. 가장 먼저 그라운드를 빠져나온 수비수 차두리(38)가 고함을 지르며 라커룸 문을 세게 걷어찼다. 실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 ‘우당탕’ 소리, 그리고 그 장면을 즐기듯 바라보던 레바논 축구 관계자들 표정이 여전히 기억난다.

전술 무용지물 레바논 원정 해법 #8년 전 엉망인 환경서 충격 패배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 재현 조짐 #선수간 소통 잘하고 흥분 말아야

패배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레바논 쇼크’라는 수식어가 한국 축구대표팀을 따라다녔다. 대한축구협회는 한 달 뒤 조광래 당시 대표팀 감독(65·대구FC 대표이사)을 경질했다. 그는 레바논 원정 전까지도 ‘만화 축구’라는 말과 함께 주목받던 감독이었다.

몇 년 뒤 사적인 자리에서 차두리 코치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봤다. 그는 “뭘 그런 걸 다 기억하냐”며 “경기를 앞두고 우리가 준비했던 걸, 단 하나도 구현할 수 없었다. 진 건 우리 잘못이지만,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아니어서 화가 났다”고 토로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 [연합뉴스]

파울루 벤투 감독. [연합뉴스]

현장에서 목격한 베이루트 경기장 그라운드는 거대한 논바닥 같았다. 잔디가 듬성듬성하거나 팬 곳이 허다했다. 짧은 패스에도 굴절이 일어났다. 레바논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이 공을 잡으면 고의적인 파울로 경기 흐름을 끊었다. 한국은 레바논 원정 두 달 전인 2011년 9월,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 레바논에 6-0으로 이겼다. 582개의 패스 중 477개를 연결했다. 성공률 82%. 베이루트에선 달랐다. 패스도 407개로 줄었을 뿐만 아니라 성공 횟수도 283개(70%)로 떨어졌다. 그라운드 상태가 열악하다 보니 준비했던 플레이는 꺼내 보이지도 못한 채, 롱 패스 위주로 단조로운 경기를 했다.

경기장 안팎 환경도 심각했다. 경기장 앞에는 미사일과 탱크, 장갑차가 배치됐고, 총을 든 군인이 경기장 안팎을 에워쌌다. 경기 내내 관중석 한쪽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독경 소리(기도문 외는 소리의 일종) 같은 게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뛰는 이와 보는 이 모두의 집중력을 시험하는 듯했다. 축구장이라고 써놓은 종교 시설 또는 군사 시설 같은 경기장이었다.

14일 오후 10시(한국시각) 한국과 레바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경기도 8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에서 열릴 모양이다. 선수단에 앞서 베이루트 현지에 건너가 경기장 상태를 체크한 축구협회 측은 ‘최악’으로 판정했다. 파울루 벤투(50·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이 경기 하루 전날 으레 하는 그라운드 적응 훈련마저 포기했을 정도다.

대표팀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캠프에서 경기 전날(13일) 마지막 훈련까지 마친 뒤 전세기 편으로 베이루트로 들어간다. 경기 직후 곧바로 아부다비 캠프에 복귀할 예정이다. 지난달 평양 원정 때와 마찬가지로 ‘열악한 환경의 원정 경기는 일정을 최소화한다’는 대표팀 운용 원칙에 따른 것이다.

8년 전 ‘재미’를 봤던 레바논이 그때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놓고 한국을 기다리는 낌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된다. 예상 못 할  변수투성이인 상황이라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 경험도, 52계단이나 높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한국 39위, 레바논 91위)도 의미 없다. 미리 준비한 전술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만큼, 선수들 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격려하며 흥분과 스트레스를 가라앉혀야 한다. 믿음직한 리더로 성장한 주장 손흥민(27·토트넘)을 중심으로 대표팀 모두가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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