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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아빠, 나 어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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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불혹(不惑·40세)을 훌쩍 넘겼건만, 고교 1학년 딸아이의 평범한 질문에 속수무책이었다. “아빠, 나 문과 갈까? 이과 갈까?”

답을 기대한 눈치도 아니었다. “문과는 경제·법학…너는 아빠를 닮았으니깐…”하고 떠들다가 멈췄다. 한심하다는 눈빛의 딸과 아내. 모녀는 ‘그래서 어느 계열이 대학 입시에 유리한가’를 고민 중이었다. 2년 뒤 수시와 정시, 교과별 등급 등에 어떤 영향을 주며 어느 대학 어떤 학과에 안착하겠느냐가 포인트다. 고차방정식의 기본도 모른 채 ‘적성’ 운운했으니 ‘아빠 맞아?’ 하는 표정이 나올 수밖에….

문·이과 선택은 인생의 변곡점이다. 희망과 설렘, 불안이 교차한다. 그러나, 요즈음의 절박감은 과거와는 천양지차다. “이과에서 내신 등급을 높이기에는 수학 선행(先行)이 부족하고…” “문과와 안 맞는 동아리를 했는데…” “잘하는 애들이 한쪽에 몰리면…” 등등. 경쟁력을 위해 고교 이전부터 선행 학습과 진로 관련 활동을 예지자처럼 챙겼어야 한다. 공자가 한국 학부모였다면 감히 불혹과 지천명(知天命)을 논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는 10대의 당연한 ‘질풍노도’가 패배자의 하소연 취급을 받는 기막힌 현실이다.

확신이 없으니 결국 학원을 찾는다. 학교는 선택을 기다릴 뿐이니까. 오죽하면 입시 교육법을 ‘코칭’하는 TV 예능프로그램(공부가 머니?)이 먹히겠는가. 2022학년도부터는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라는데, 결국 상위권 대학의 과목 선택에 좌지우지되는 ‘말뿐인 통합’이라는 시장의 평가가 벌써부터 나온다. 대통령발(發) 정시 확대는 또 어떤 ‘디테일의 악마’를 만들까. 교육 시스템에 대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학생과 학부모는 오늘도 좌절한다.

김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