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키즈 탄생 꿈꾸는 베이징 키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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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훈련 중 모인 고우석 강백호 이정후. 김효경 기자

대표팀 훈련 중 모인 고우석 강백호 이정후. 김효경 기자

"어려서 뽑은 게 아니라 잘 해서 뽑은 거야."
김경문(61) 야구대표팀 감독을 흐뭇하게 만드는 선수들이 있다. 이정후(21·키움), 고우석(21·LG), 이승호(20·키움), 강백호(20·KT)다. 김경문 감독이 이끈 대표팀이 베이징 올림픽을 보며 자라난 '베이징 키즈'들은 이제 주인공이 됐다. 자신들의 활약을 보며 '도쿄 키즈'들이 성장하길 바라는 꿈도 키우고 있다..

프리미어12 대표팀 막내 4총사 #이정후-이승호-고우석-강백호

프리미어12에 출전중인 대표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막내 4총사다. 이들은 '베이징 키즈'라고 불리는 세대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등 한국 야구의 황금기를 지켜보며 성장했다.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이정후를 제외한 3명은 모두 이번이 첫 성인 대표팀 발탁이다. 이정후는 "그 전부터 야구를 시작했지만 선배님들을 보며 '멋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우석은 "베이징 올림픽을 보며 국가대표의 꿈을 키웠는데 발탁이 돼 너무 기쁘다"고 했다.

2일 푸에르토리코와 평가전에서 등판한 이승호. [뉴스1]

2일 푸에르토리코와 평가전에서 등판한 이승호. [뉴스1]

김경문 감독이 '실력을 보고 뽑았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네 선수는 프로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정후는 2017년 신인왕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엔 타율 0.355로 3위에 올랐다. 올해도 타격 4위(0.336), 최다안타 2위(193개), 득점 4위(91개)로 더 발전된 기량을 뽐냈다. 이정후와 절친한 1년 후배 강백호는 지난해 고졸 신인 최다 홈런(29개) 기록을 세우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올해는 불의의 사고로 손바닥 부상을 입었지만 타격 5위(0.336)에 오르며 컨택트 능력까지 선보였다.

프로 3년차 고우석과 이승호는 올시즌 부쩍 성장했다. 고우석은 올해 정찬헌의 부상 여파로 LG 마무리를 맡았다. 최고시속 155㎞ 강속구를 뿌리는 고우석은 든든하게 뒷문을 지켰다. 정규시즌 35세이브를 올리며 구원 2위에 올랐다. 준플레이오프에선 두 경기 연속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고전했지만, 3차전에서 이겨냈다. 좌완 이승호는 부상을 당한 구창모의 대체선수로 대표팀 막차를 탔다. 정규시즌 8승을 거둔 이승호는 생애 첫 포스트시즌에서도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던져 김경문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국가대표팀은 '성장의 발판'이다. KBO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모여 서로의 야구관, 기술을 나누면서 더 성장한다. 처음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은 더욱 그렇다. 강백호는 "우리 팀엔 좌타자들이 많지 않은데 대표팀엔 뛰어난 왼손타자들이 많다. 그래서 배울 게 너무 많다"며 웃었다. 이승호도 같은 왼손투수인 양현종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승호는 "양현종 선배님께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너무 잘 가르쳐주셔서 이야기가 길어졌다. 감사하다"고 했다.

네 선수에게 기대가 모이는 건 단순히 경험을 쌓기 위해 뽑힌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경문 감독은 두산과 NC 사령탑 시절 젊은 선수들을 잘 활용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도 20살의 김현수(31·LG)를 과감하게 왼손투수 상대로 대타를 내보낸 적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네 선수 모두 적잖은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팀 분위기도 낯설 법하지만 서로의 존재 덕분에 편하게 지내고 있다. "우리 안 친하다"고 농담을 하면서 서로 장난을 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2016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 함께 출전해 준우승했던 강백호와 이정후, 고우석은 "이번에는 그때의 눈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패기있게 말했다. 도쿄에서 열리는 이번 프리미어12, 그리고 내년 올림픽에서 이들의 활약을 보고 프로선수의 꿈을 키우는 후배들이 10년 뒤 등장하지 말란 법은 없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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