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北인사들 처리 선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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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송두율 교수에 대한 처리 문제를 놓고 과거의 사례를 참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밀입북했거나 친북 성향으로 분류됐던 인사들의 처리 선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장 최근의 예는 1999년 구속된 김영환씨다. 학생운동에 주체사상을 접목시킨 '강철서신'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金씨는 학생 신분으로 북한에 밀입국한 뒤 40만달러라는 거액의 공작금을 받아 남한 내 지하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을 설립했다. 金씨는 이 같은 혐의 내용을 국정원에 자수하면서 모두 밝힌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나 그는 "북한의 수령론은 거대한 사기극이었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제출하고 대공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이 참작돼 공소 보류됐다.

93년에는 북한에 다섯차례 다녀온 뒤 25만달러의 공작금과 함께 지령을 받아 활동한 혐의로 소설가 황석영씨가 구속 기소된 바 있다. 黃씨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단행된 98년 3월 대사면 때 가석방됐다.

90년 황인오.인욱 형제는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입북한 뒤 북측의 지령을 받고 내려와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결성해 활동하다 적발됐다. 이들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98년 3월 사면으로 가석방됐으며 올 4월 잔형이 면제됐으며 복권됐다.

宋교수처럼 입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해외 망명객으로는 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고(故) 윤이상씨와 고(故) 이응로 화백이 있다. 이들은 당시 독일 정부의 강력한 항의에 따라 형 집행이 정지된 뒤 추방돼 尹씨는 독일에서, 李씨는 프랑스에서 예술 활동을 하다 사망했다.
전진배 기자allon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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