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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달라” 외침에 바다 뛰어든 경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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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29일 오전 3시10분쯤  칠흑같은 어둠이 깔린 전남 목포시 평화광장 인근 바다에서 ‘풍덩’ 하는 소리가 났다. 술을 마신 후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가던 A씨(28)가 갑자기 택시를 세운 뒤 바다로 뛰어든 소리였다.

수영 못하지만 시민 구하려 몸 던져 #“할 일 했다” 이름·얼굴 공개도 꺼려

놀란 A씨의 친구는 근처 난간에 걸린 구명튜브를 꺼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구명튜브 밧줄이 마구 엉켜있어 풀리지 않았다. 친구는 다급한 마음에 인적이 끊긴 거리 쪽을 향해 “사람이 빠졌어요.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 다행히 친구의 외침을 들은 행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목포경찰서 하당지구대로 “바다에 사람이 빠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A씨가 빠진 평화광장 바다분수는 도심과는 인접해있지만, 주말에나 사람이 몰릴 뿐 평일에는 인적이 드물다.

신고를 받은 하당지구대 소속 정모(29) 순경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A씨는 육지에서 약 30m 떨어진 곳까지 떠내려가 있었다. A씨는 의식을 잃은 듯 바닷속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정 순경은 당시 상황을 “A씨가 빠졌다는 방향을 보니 움직임이 없는 검은 물체만 보였었다”고 기억했다.

정 순경은 항구 도시인 목포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수영을 못한다. 대신 목포경찰서에 배치된 경찰차에는 구명조끼와 구명튜브가 비치된 사실이 떠올랐다. 최근 링링, 타파, 미탁 등 태풍이 3차례나 불어닥친 탓에 경찰차 내 해양 구조장비가 보강된 것이다.

정 순경은 구명조끼와 구명튜브에 의지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경찰이 출동하는 사이 엉킨 밧줄을 푼 A씨의 친구도 구명튜브를 끼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정 순경은 수영을 잘 못 하는 탓에 뒤늦게 출발한 친구와 비슷한 시간에 A씨 곁으로 도착했다. 이때 정 순경과 함께 출동했던 동료는 소방서와 경찰서에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

정 순경과 친구는 어둠 속에서 A씨를 간신히 붙잡아 뭍으로 끌어올렸다. A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고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영을 못하는 정 순경도 구조과정에서 바닷물을 마셔 병원 치료를 받았다.

정 순경은 하당지구대에 배치된 지 1년밖에 안 되는 신임 순경이지만 경찰서장 표창 바로 아래 단계인 ‘장려장’을 지난 8월과 9월 수상했다. 지난 8월에 “옥상에서 투신하겠다”는 자살 신고문자를 확인하고 자살 기도자를 구조한 데 이어 지난 9월에는 현금 절도 용의자를 검거했었다. 정 순경은 이번에도 한 명의 생명을 구했지만,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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