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등 돌려 … 노조 최대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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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본사를 8일간 점거하는 악수를 두었던 포항지역 건설노조가 사실상 와해될 처지에 놓이는 등 설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1989년 4월 결성돼 노조원이 3000여 명인 포항건설노조는 그동안 결속력이 강한 강성 노조로 알려져 왔다.

이번 사태를 주도한 이지경 노조위원장 등 노조 간부 20여 명을 비롯한 노조원 58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등 지도부가 공백인 상황에서 사용자 측과의 협상 재개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사측인 전문건설협의회는 "노조가 협상을 요구하면 언제든지 응하겠다"면서도 '토요 유급휴무제''외국인 근로자 고용금지'등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노조원의 결속력이 떨어진 점이다. 농성 중 '노-노'갈등이 심해 예전의 조직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농성장을 빠져나온 상당수 노조원은 "집행부가 강수를 두는 바람에 협상의 여지마저 없어졌다"며 "얻을 것도 없는데 왜 포스코 본사를 점거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 다른 노조원은 "집행부의 판단 잘못으로 일반 노조원만 피해를 보게 됐다"며 "앞으로 노사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파업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본사 점거 농성 중 일부 과격 노조원이 환자를 나가지 못하게 막는 등 비민주적인 행태를 보여 노조원 간 갈등의 골을 깊게 했다.

시민 여론이 등을 돌린 것도 큰 타격을 줬다. 시민들은 파업 초기 어느 정도 동정론을 폈다. 건설공사 현장에서 고생하는 근로자들인 만큼 사측도 처우 개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점거기간이 길어지고 이들의 과격 농성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여론은 "제3자를 볼모로 하거나 법을 위반한 과격 파업은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포스코나 사측도 물밑 교섭을 하지 않는 등 원칙을 고수했다.

노동계는 "노사 갈등의 문제점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겠다며 시도한 발주회사 압박이란 새로운 형태의 파업이 여론의 힘에 밀려 완전히 실패했다"며 "노동운동 전반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포항=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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