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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생 남편과 본 '82년생 김지영'…어떤 말 오갔나

중앙일보

입력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82년생 김지영' 보러 갈래?"

먼저 제안한 쪽은 남편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이 섞여 '이렇다 저렇다' 하도 말이 많으니, 직접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같이 보고 싶을 텐데 혹시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심리도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영화를 관람하고 온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남편과 같이 보면 싸울 것 같기도 해서 혼자 봅니다'라는 식의 평가도 남겼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1일 기준 관람객이 180만명을 넘어섰다. 관람객 평점도 10점 만점에 9.43점으로 높다. 하지만 네티즌 평점은 6.46점으로 중간 정도다. 네티즌 평점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평가할 수 있는데, 남성 네티즌의 평점이 2점대로 낮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 관람객의 평점이 9.21점인 것과 대조적이다.

1일 기준 '82년생 김지영' 포털사이트 평점. 관람객 평점에 비해 남성 네티즌 평점이 낮다. [네이버 캡쳐]

1일 기준 '82년생 김지영' 포털사이트 평점. 관람객 평점에 비해 남성 네티즌 평점이 낮다. [네이버 캡쳐]

왜 이런 간극이 있는 걸까. 책도 읽고 영화도 본 남편과 관람 후 이야기를 해봤다. 남편은 85년생으로 기자보다 한 살 많고, 우리가 결혼한 지는 1년 정도가 되었으며, 맞벌이 부부이고 아이는 없다.

아내: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뭐야? 
남편:김지영씨 엄마가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이 울던데. 나는 극 중 남편인 장대현씨가 아내 김지영씨의 '정신병'을 당사자에게 말하며 우는 장면이 너무 슬펐어. 공감이 가더라고. 아내나 가정의 불행을 남편은 자신의 부족, 나의 능력 부족으로 생각하게 되니까.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가장이다' '남자는 가족을 잘 돌봐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배워왔잖아. 너의 행복이 꼭 나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닌 것처럼 불행도 마찬가지일텐데, 아직까지 가정에 대해서는 '주입된 책임감' 이런 게 있어. '누가 그러래?'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아내:나도 엄마가 등장하는 장면은 너무 슬펐어. 그런데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다른 거야.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지영씨가 카페에서 자신을 '맘충'이라 부른 사람에게 다가가 따지잖아. 내가 왜 맘충이냐고. 문득 나 자신도 김지영씨를 맘충이라고 지칭한 남성 직장인을 잡아끌며 '그냥 가자'라고 말했던 그 여성 직장인과 같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 뜨끔했어. 언젠가 나도 아이를 데리고 허둥대는 여성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서. 미안하고 부끄럽더라고. 영화 속 여성들은 시어머니 등을 제외하고 대다수가 '연대'한다는 느낌이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여성 내에서의 차별도 많겠지.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포털사이트의 '82년생 김지영' 페이지에 들어가면 '명대사'를 적는 부분에 영화에 나오지 않은 대사들이 적혀 있다. '군대가 뭐가 힘들어?!' '가정주부의 가장 안 좋은 점은 힘든 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등이다. 오히려 진짜 영화에 나온 대사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았는데, 남성이 차별을 받는 지점들은 왜 이렇게 '당연하게' 여겨지는지에 대한 한풀이의 느낌들이 강했다.

아내:살면서 남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야?
남편:남자라는 이유로 좀 더 많은 의무를 져야 할 때 차별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 힘쓰는 일도 남자라서, 야근 때 더 오래 남아야 하는 것도 남자라서, 군대도 남자라서 갔다 온 거잖아. 사실 이 '의무'들이 나쁘진 않거든? 근데 이 의무를 '당연하다'라고 하며 넘어가려고 할 때 화가 나는 것 같아. 너는 여자라서 차별받았다고 느낀 게 어떤 것들이야? 

아내:여자라는 이유로 어떤 활동에서 배제될 때 차별이라고 느껴. 책에도 등장하지만, 나는 그런 '배려'를 원하지 않았거든. 남성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부분은 일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면 같이 감수하고 싶었어. 그런데 여성인 나를 편하게 해준다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배려를 해 놓고는, 남성들끼리 '힘들었다, 수고했다'며 다독이고, 평가도 그걸 반영해서 하는 게 좀 씁쓸하지.  

영화 '82년생 김지영' 촬영 현장 모습.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 촬영 현장 모습.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책과 달리 여성과 남성의 '이해'에도 어느 정도 초점을 맞췄다. 김지영씨를 위해 보약을 한 채 더 주문하는 아버지, 누나가 좋아하는 줄 알았던 단팥빵을 사 가는 남동생의 모습이 그렇다.

남편:사실 보기 전에는 나도 편견이 있었어. 책은 남성을 좀 '악역'으로 그려놨거든. '잠재적 범죄자'로 남성을 그려놓은 것도 있었고, 결국 책 마지막도 남성 의사가 '여자 직원은 안 뽑아야지' 라고 하면서 끝나니까. 그런데 영화는 실제로 남녀갈등이 생길만한 지점이 부각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 보고 나니 '여성들이 이런 지점에서 이런 것을 느끼며 살아왔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몰랐던 부분들에 대해서 말이야. 

아내:여성이 스토리의 주인공이니까, 철저히 여성 입장에서 쓰여진 이런 영화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남성이 서사의 중심이 된 영화들은 정말 많잖아. 갈등을 부추긴다기보다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측면이 강한 영화였던 것 같아. 하지만 정말 걱정스럽긴 하다. 우리 아이 낳고 잘 살 수 있을까? 진짜 힘들 것 같아. 

남편:그러게. 애가 있으면 또 완전히 다른 세계가 생길 것 같긴 해. 휴….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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