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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길 뻔한 공원 지킨 주민들의 작은 반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59호 20면

공원 사수 대작전

공원 사수 대작전

공원 사수 대작전
황두진 지음
반비

서울 통의동 127평 마을마당 #청와대가 민간에 팔자 되찾아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경신원 지음
파람북

오늘부터 나는
세계 시민입니다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공윤희·윤예림 지음
창비교육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7-3. 청와대 들어가는 입구, 경복궁 영추문 맞은편 효자로에 위치한 ‘통의동 마을마당’이라는 작은 공원의 주소다. 여기서 주민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빼앗길 뻔한 동네 소공원을 시민들이 온몸을 바쳐 지켜 낸 사건이다.

『공원 사수 대작전』은 그 기록을 담은 책이다. 무슨 대단한 학문적 성취나 엄청난 문학적 의미를 담지는 않았지만 21세기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가 거대한 국가기관에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오늘부터 나는 세계 시민입니다

오늘부터 나는 세계 시민입니다

통의동 마을마당의 넓이는 419.4㎡로 127평밖에 되지 않는다. 사유지였던 이 땅은 1986년 서울시 소유가 됐다. 서울시는 96년 이곳을 비롯한 시내 10곳에 주민을 위한 소공원인 마을마당을 조성했다.

그런데 공원 소유권이 서울시에서 국가로 넘어가고 청와대가 관할관청이 된 직후인 2010년 10월 첫 위기가 닥쳤다. 마을마당에 경찰이 경호시설을 짓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공원 바로 옆에 사무실을 둔 저자는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접수하고 공원을 지키자는 취지의 팸플릿을 제작해 배포했다. 다행히 ‘주민들에게 피해 가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는 윗분의 지시로 공원의 용도 변경은 중단됐다.

2016년의 ‘2차 공원 대란’은 심각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당시 청와대는 민간인에게 이 땅을 실제로 넘겼다. 청와대 인근 토지와 맞바꾼 것이다.

저자와 ‘공사모(공원을 사랑하는 시민 모임)’는 사력을 다해 전면전으로 맞섰다. ‘우리 모두의 이 공원을 지켜주세요.’ 이런 현수막을 내걸고 무인 서명대를 설치해 시민들의 지지를 구했다.

원래 공원을 조성했던 서울시에 면담을 요청하고 7개 국가기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상기 토지의 소유권 변동 여부는 당사자 간에 논의돼야 할 사항’이라는 정도의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건축가 황두진씨 등 서울 통의동 주민들이 마을 공원을 지키기 위해 내 건 현수막. 민간 매각을 막아내 현재 재조성 공사 중이다. [사진 반비]

건축가 황두진씨 등 서울 통의동 주민들이 마을 공원을 지키기 위해 내 건 현수막. 민간 매각을 막아내 현재 재조성 공사 중이다. [사진 반비]

그래도 공사모는 물러서지 않았다. 저자는 중앙일보에 ‘공원은 시민의 공유지다’는 기고문을 보내는 등 또 다른 시스템인 언론에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절망이 일상화하는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그런 노력의 결실로 드디어 서울시와 의회는 통의동 마을마당을 재매입하는 예산을 편성해 올해 2월 15일 자로 다시 서울시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주민들의, 시민들의 힘으로 작은 공원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분노의 기록’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분노가 연료가 되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그 분노는 격렬한 표현이나 타인에 대한 맹렬한 비난으로 표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분노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통의동 마을마당은 재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어렵게 사수한 공원이 대견해 보인다.

『공원 사수 대작전』같이 시민들의 일상을 기록하거나 관찰한 책들도 눈길을 끈다.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은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을 분석했다. 저자는 서울에서 가장 이국적이면서도 낙후됐던 동네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는 이태원의 변화를 집중 조명했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차갑게 식는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둥지내몰림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한다.

『오늘부터 나는 세계 시민입니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으나마 세계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 환경·여성·노동·차별·혐오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변화를 향해 움직이는 세계 시민이 늘어날수록 지속가능한 세상이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맞는 ‘투 두 리스트(To Do List)’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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