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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나라를 망칠 분명한 증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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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호 31면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조선 왕 선조의 장남 임해군은 악명 높은 사이코패스였다. 백성들의 재물 약탈을 일삼고 노비나 궁녀들을 내키는 대로 겁탈하고 죽였다. 애첩을 빼앗기 위해 수하들을 화적떼로 위장시켜 특진관 유희서를 살해하기까지 했다. 특진관은 왕의 고문격인 데다 유희서는 영의정을 지낸 유전의 아들이었다. 조정이 발칵 뒤집혔음은 물론이다.

공수처 수장 독립에 성패 달려 #현재 여권안은 제 기능 어려워 #정치 간섭 없으면 검찰로 충분 #언론 압박은 다른 의도의 표현

형조와 포도청의 공조수사 결과 배후에 임해군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임해군을 처벌하라는 상소가 잇달았지만, 선조는 귀를 막았다. 그 사이 포도청에서 수사받던 범인들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임해군은 무고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선조는 기다렸다는 듯 승정원에 재조사를 지시한다. 승정원이란 왕의 비서실 아닌가. 선조의 뜻대로 포도대장 변양걸과 유희서의 아들 유일에 대한 문초가 이뤄지고, 이들이 장을 맞고 유배에 처해지는 것으로 결말이 뒤집히고 만다.

400여년 전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는 건, 조국 사태와 공수처 논란이 오버랩되는 까닭이다. 공수처에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여권에서 추진하는 법안으로는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가 불가능해 보여서다. 그런데도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는 게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공수처의 성패 여부는 수장의 정치적 독립에 달려 있다. 백혜련 법안대로 공수처장을 정한다면 결코 공수처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여야가 추천한 2명의 후보를 놓고 대통령이 고른대도, 대통령이 야권 인사를 선택할 리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면 검·경에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는 공수처는 지금처럼 말 안 듣는 검찰을 손보는 기구가 될 수밖에 없다. 선조의 승정원처럼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만약 공수처가 있었다면 조국 일가 관련 수사는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거다. 인사청문회 제도에 사형선고를 내려가면서까지 장관을 시켰는데, 그를 수사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려면 윤석열 검찰총장 같은 ‘별종’이 또 나타나 공수처장이 돼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 우리는 잘 안다. 그렇다고 권은희 안처럼 국회 동의를 받게 하면, 공수처장 임명에 부지하세월일 가능성이 크다.

선데이칼럼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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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용성도 떨어진다. 거악(巨惡)의 비리 수사에 검찰만큼 잘 드는 칼이 또 어딨나. 특수부가 특히 그렇다.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특수부를 확대하고 특수부 검사들을 요직에 기용한 것도 그렇기 때문 아니었나 말이다. 그러다가 칼날이 자기편을 향하니까 ‘무소불위 검찰’ 운운하며 이들을 손볼 조직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건 무슨 말을 해도 국민을 속일 수 있다고 믿는 오만 아니고 뭔가.

권력이 간섭하지 않으면 검찰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 좋은 선례를 남겼다. 지금처럼 살아있는 권력에도 검찰의 칼이 향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이런 선례가 전통으로 쌓이면 저절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다. 권력이 눈을 돌리지 않으면 권력과 야합하려는 검사도 나올 수 없지 않겠나.

그런데도 검찰과 언론에 압박을 계속하는 걸 보면, 본의가 그게 아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감출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식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임무’가 검찰에 대한 복수가 아니었나 싶어 소름 돋는 건 나뿐일까. 설령 그렇다 해도 방법은 한가지다. 검찰을 독립시키면 된다. 노 전 대통령의 가슴 아픈 죽음 역시 권력에서 독립하지 못한 검찰과 무관하지 않은가 말이다.

검찰의 자체 비리 역시 감찰 기능을 강화하면 된다. 이미 외부인사로 임명하는 감찰본부장이 있으니 강직한 인물로 잘 활용하면 된다. 중요한 건 기구가 아니라 운용이다.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행사를 잘못하기 때문이다. 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잘못 쓰는 까닭인 것이다. 책임은 오직 임명권자에 달렸다.

사건이 뒤집힌 뒤 영의정 이덕형은 끝내 참지 못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소를 올렸다. 그러자 선조는 발끈해 비망기를 내린다. 비망기는 임금이 의중을 글로써 밝히는 정치행위다. 사관은 실록에 이를 기록한 뒤 평을 남겼다. 그것이 참으로 서늘하다. 결론으로 대신할 만해 길지만 인용한다.

“사신은 논한다. 예부터 충성스럽고 곧은 말 하는 선비는 대부분 배척당했지만, 오늘날처럼 심한 경우는 없었다. (...) 성상께서 가상하게 받아들여 용납하는 분부를 내렸다면 천심을 돌리고 여론을 통쾌하게 해 국가 형세를 반석 위에 올려놓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경박하게 자존심만 내세우고 배척하면서 종이 가득히 반대하는 말만 낭자했다. (...) 이런데도 과연 임금의 말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주변의 방자함을 단속하고 흩어진 민심을 수습할 수 있겠는가. (...) 언로를 막고 구차하게 침묵을 지키는 것을 장려함으로써 사론을 위축시키고 국세를 날로 깎이게 하였으니 신은 국가가 필경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다. 그래서 연초의 흰 무지개가 큰 재변이 아니라, 오늘의 비망기가 곧 나라를 망칠 분명한 증거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선조 37년 3월 27일)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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