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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17% 소방 낙제점” 동대문 70% 방화셔터도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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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9월 22일 서울 중구 제일평화시장에서 발생한 화재를 소방대원이 진압하는 모습. 이날 불은 진화 되는 데 23시간이 걸렸다. 불이 난 이 시장 건물 3층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있지 않았다. [뉴시스]

9월 22일 서울 중구 제일평화시장에서 발생한 화재를 소방대원이 진압하는 모습. 이날 불은 진화 되는 데 23시간이 걸렸다. 불이 난 이 시장 건물 3층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있지 않았다. [뉴시스]

서울 중구 동대문 제일평화시장 앞엔 붉고 푸른 색깔의 천막이 길게 늘어서있다. 9월 22일 이곳에 불이 나 점포 자리를 잃은 상인들이 옷을 팔기 위해 설치한 천막이다. 이들은 쌀쌀해져가는 날씨 속에서도 천막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기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아직 희미하게 탄 냄새가 남아 있었다. 이렇게 천막 매장에서 화재 복구를 기다리고 있는 상인들은 300여 명이다.

건립 당시 소방시설 의무 없던 탓 #“지금 스프링클러 설치도 어려워” #전국 시장 화재 피해 연 105억원 #“화재공제보험 가입 등 정책 필요”

제일평화시장 화재 피해가 컸던 원인 중 하나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는 점이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 상가 1~3층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1979년 문을 연 제일평화시장은 2014년 4개 층을 증축할 때 새로 지은 층에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다.

문제는 이 시장만 화재 위험에 노출된게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최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소방청으로부터 서울 중구 동대문 일대 시장 상가 11곳에 대한 소방시설 설치 현황을 받은 결과, 상가 전체의 21.9%(105개층 중 18개층)는 스프링클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는 상가들이지만, 이 시장상가가 문을 연 1960~80년대엔 이 같은 의무조항이 없었던 탓이다. 소방 관계자는 “지금 스프링클러 설비를 설치하려 해도 건물 구조상 설치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전통시장 화재 현황

전통시장 화재 현황

동대문 지역 시장 상가에서 불이 다른 층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방화셔터 설치율도 29.5%(105개층 중 31개층)였다. 이재수 제일평화시장 상우회장은 “다 장사만 할 줄 아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데 불이 날 거라 생각한 사람도 없었고, 누가 화재 안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전통시장 화재는 피해 복구도 오래 걸린다. 복구를 위한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지원 근거가 마땅치 않아서다. 이재수 상우회장은 “별다른 지원없이 자비로 복구 비용을 충당해야 해 꺼리는 이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올해 1월 화재 피해를 입은 원주 중앙시장도 피해 복구를 위한 재정 지원을 받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이곳 역시 완전 복구가 안된 상태다.

소방청에 따르면 전국 전통시장 화재로 인한 피해액은 2014~2018년 526억원에 이른다. 해마다 105억원 정도의 화재 피해가 발생하는 셈이다. 화재 건수는 연평균 47.2건이다.

전통시장 화재 위험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소속)이 공개한 중소벤처기업부의 ‘소방전기가스분야 안전등급별 시장 현황’에 따르면 ‘화재시 화재확산을 막을 수 있는 소방설비 관리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E등급을 받은 시장은 250곳이다. 전국 전통시장의 16.8%에 이른다. 특히 가스 안전 분야 최하등급인 E등급 전통시장은 537곳(36.1%)이었다.

시장 상인들의 화재 보험 가입률이 저조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전통시장 점포 61%가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인 44.4%는 ‘보험료가 부담된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일반 보험료보다 저렴한 화재공제보험을 2017년부터 운영하고 있지만 가입률은 10% 미만이다.

어 의원은 “전통시장 소방시설을 개선하고 상인들에게 화재공제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등 화재에 대비할 수 있는 실질적 정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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