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밀어붙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당장 국회법과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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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에 대한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조국 사모펀드관련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공소장을 통해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에 대한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조국 사모펀드관련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공소장을 통해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법무부가 30일 발표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훈령이 당장 기존 국회법 및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며 졸속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 "법무부, 검찰 자료요구 거절할 명분 또 늘어" #법조계 "훈령, 상항따라 악용될까 우려"

법무부의 새 훈령에 따르면 기소된 피고인의 경우 공소장 공개가 불가능하다.

법무부 새 훈령 유명무실 지적

하지만 국회의 자료제출 관련 법률에 따라 법무부에 특정인에 대한 공소장을 요구할 경우 법무부가 법률이 아닌 훈령으론 이를 거절할 수가 없다. 법무부의 이번 조치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 아니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무부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칙 훈련을 발표한 김오수 법무부 장관 대행이 22일 오전 열린 국회 예결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칙 훈련을 발표한 김오수 법무부 장관 대행이 22일 오전 열린 국회 예결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주요 수사와 관련한 피고인의 공소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소속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공소장을 언론과 국민에 공개하며 보도되고 있다. 법무부의 새 훈령은 이런 기존 보도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가 어렵다.

김한규 전 서울변협 회장은 "훈령보다 상위에 놓인 법률이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가 훈령을 제정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법무부→국회→언론 통해 공소장 공개  

국회법 128조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르면 국가기관은 국회의 자료 요구시 군사·외교·대북 관계에 관한 국가기밀이 아닌 경우 자료제출에 응해야 한다.

특정 피고인의 공소장이 이에 해당하는 경우는 드물어 법무부는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해왔다.

조국(54)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57) 동양대 교수의 공소장과 그의 5촌 조카인 조범동(37)씨의 공소장도 이런 방식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조국 일가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된 버스 공공와이파이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조국 일가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된 버스 공공와이파이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국회 법사위 소속 여야 관계자는 "법무부의 새 훈령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며 "다만 검찰과 법무부가 자료 제출을 거절할 핑계가 생긴것 같아 법률에 따라 철저히 자료를 요구할 것"이라 말했다.

법무부 "언론 흘리기 막겠다는 취지"

법무부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훈령의 경우 국회 자료 요구와 별개로 검찰의 '공보 업무'에 제한을 두는 것이라 충분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사 전과 기소 뒤 공소장이 공개되기 전 검찰의 이른바 '언론 플레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새 훈령에 따르면 공소제기 뒤 사건뿐만 아니라 수사 중인 사건은 검찰의 언론 공보가 차단되고 불기소 사건은 비공개 처리토록 해 기존의 '피의사실 공표' 관행을 끊어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회의 공소장 요구 문제에 대해선 조금 더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의 검찰 깃발이 태극기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최정동 기자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의 검찰 깃발이 태극기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최정동 기자

법무부 초안엔 공소제기 사건도 비공개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논의 과정에서 법무부 초안에는 공소 제기된 사건의 경우도 피고인의 이름과 공소제기 방식 등 극히 일부 정보를 제외하곤 모두 비공개가 원칙이었다.

하지만 대검에서 공소가 제기된 뒤에는 "사건의 일부라도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해 훈령 최종안에는 공소사실의 요지와 수사경위, 수사 상황 등이 공개 범위에 포함됐다.

법조계에선 효력 논란뿐 아니라 법무부가 '훈령 개정'을 통해 제도를 변경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상당하다.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한 출입기자가 기자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한 출입기자가 기자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점엔 동감하지만 국민의 알권리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결부된 문제를 법무부가 관계 기관 및 언론, 시민 단체와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국민의 알권리 등 다양한 가치가 결부된 문제를 다룰 때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 입법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라며 "지금과 같은 훈령 개정은 정권과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질하거나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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