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제 뛰는데 정치·사회는 걸음마|삐뚤어진 우등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현재 수위 성장에만 치우쳐 그늘 속 갈등심화>
균형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의 신체나 영양상태가 균형을 유지해야만 하듯 정치·경제·사회·문화등 각 분야의 발전도 서로 엇비슷한 수준으로 맞물려 나아가는 것이 소망스럽다.
차라리 발전의 속도가 더뎌질지라도 그같은 각 분야의 균형상태를 깨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우리의 경험과 현실들이 그같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정치발전을 유보시킨 채 새마을 노래를 합창하며 허리띠를 졸라맸던 결과 GNP는 불려놓았지만 그 과정에서 누적된 불균형은 결국 때가 되니 노사분규 등으로 폭발하면서 우리 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
모든 분야가 가속적으로 세계를 향해 개방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혀가고 있는 마당에 유독 배에 대해서만 눈감고 귀 막을 것을 강요하다가 필연적으로 부닥치게 된 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 극심한 이데올로기적 혼란이다.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의 정치수준을 외국인들이 손가락질하고 올림픽을 치렀던 나라가때 늦은 식수소동에 벌집을 쑤신 듯 야단이다.
세계에서 열여덟번째로 큰 증시를 일구어 놓은 나라에서 아직도 여전히「증권투자는 자기 책임하에 자기 판단으로」라는 계몽광고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내야만 하는가 하면, 전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을 실시하기 시작한 나라의 40대들은「세계 최고 수준의 순대 사망률」이라는 우울한 통계에 시달리고 있다.
바로 그같은 불균형들이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 상존하고 있기에 세계 속에서 한국이 그리고 있는 위상지도는 둥근 원형이 되지 못하고 들쭉날쭉 심하게 이지러진 모습을 하고있다.
이지러진 한국의 위상-.
그것이 국제화 시대로 줄달음질치고 있는 우리의 정직한 모습이며, 그같은 각 분야의 불균형이야말로 지역간·계층간의 격차보다도 훨씬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요,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인 것이다.
정치·경제·사회·과학·문화 등 5개 분야의 대표적인 지표들을 골라 위상지도를 그려보 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경제분야의 지표들이 차지하고 있는 넉넉한 영토다.
87년 기준 세계 38위의 1인당 GNP(3천98달러), 88년 기준 세계 3위의 정상수지 흑자(1백41억6천만달러), 세계 3위의 교역규모(1천1백5억7백만달러)를 기록했으니 전세계 1백89개 국가 중 우리 경제가 차지하는 위상은 당연히 최 상위권이다.

<경제발전 외형지표론 우량속으론 빈 강정격>
시가 총액으로 따진 증시규모도 88년 말을 기준으로 할 때 거래소별로는 세계 18위, 국가별로는 세계 14위로 톱 클라스에 든다.
그러나 자랑스럽게 내세울만한 그같은 지표들은 어디까지나 양적인 외형지표들임을 주목해야 한다.
경제의 질적 지표라 할 소득분포도, 국민 1인당 철강소비량, 자동차 1대당 인구수 등을 짚어보면 비록 세계적으로 중간 수준은 넘었지만 아직 우리는 최 상위권에는 들지 못했다.
소득 편중도를 나타내는 지니(GINI) 계수는 적을수록 좋은 것인데 한국은 80년 기준 0·389로 스페인보다 못하고 필리핀보다는 낫다.
지니계수 자체를 내지 못하는 나라도 많고, 또 지니계수의 의미에 회의를 갖는 학자도 많지만 그 정도면 세계적으로 중 상위권에는 든다는 것이 KDI(한국개발연구원)등 연구기관전문가들의 견해다.
산업구조의 발전정도를 짚어볼 수 있는 1인당 철강소비량은 88년에 3백77kg으로 일본의 7백kg, 미국의 5백50kg에 비해 현저히 뒤진다.
대개 5백kg을 넘으면 선진국으로 친다고 하니 철강소비도 아직 최상위에는 못 든 중상위 수준인 셈이다.
이처럼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경제분야에서도 이를테면 양과 질의 격차는 금방 나타나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