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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풍수학] 용인 땅이 살기 좋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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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은 한남정맥을 가지를 치는 지역으로 옥녀가 아기를 품고 있는 지세다.

이코노미스트경기도 용인시 구성읍을 보면 ‘구성(駒城)’이란 말이 새삼 의미를 띠고 다가온다. 구성의 ‘구’자는 망아지를 뜻한다. 많은 이름 중에 이곳을 왜 구성이라고 했을까. 용인시를 ‘서울시 용인구’라고 비아냥거리듯이, 특히 구성읍 일대는 서울 사람들을 위한 아파트 건설로 온전한 땅을 찾기가 어렵게 됐다.

구성이란 지명은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처음 등장한다. 고려 태조는 이곳을 용구(龍駒)로 고쳤다. 그 뒤 조선 태종 때에 지금의 남사면 지역인 처인(處仁)현과 합하면서 용인(龍仁)으로 고쳤다. 용인시의 중심이 지금의 구성읍이다. 용인향교 등이 구성에 있는 것도 이곳을 용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구성은 용인군 읍내면으로 이름이 바뀐다. 다시 31년 일제가 용인군의 중심을 현재의 김량장동으로 옮기고 이름을 용인읍으로 변경하자 읍내면은 새 용인읍과 구분하기 위해 옛 이름인 구성을 되찾게 됐다.

고구려가 붙인 구성은 그만두고라도 고려시대에 이곳을 용구라고 부른 것은 분명 지리와 인연이 깊다. 용구란 이곳의 땅이 ‘늙은 말’이 아니라 젊고 힘 있는 망아지와 같다는 뜻이다.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의 본래 의미와는 달리 용인 일대가 음택지로 각광받은 것도 이런 지리적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용인 일대의 땅이 좋다는 이유는 이렇다. 안성 칠현산에서 시작되는 한남정맥이 북으로 올라와 한강 이남, 수원 이북의 지세를 형성하는데 그 중간 교량 역할을 맡은 곳이 용인의 석성산이다. 이 산을 일명 보개산(寶盖山)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풍수용어로 주필산(駐 山:산의 가지가 뻗어가는 산)이라 한다. 수원 광교산이나 성남의 남한산성, 오산 등지의 산들이 모두 여기서 가지가 뻗어간다. 새 가지에서 잎이 나고 열매가 맺는 법이다.

기흥읍 신갈리에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생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알려진 얘기다.

이제 우리는 석성산 동쪽, 김량장동으로 용인시의 중심이 옮겨오게 된 이유를 살펴보자. 석성산 서쪽, 옛 용인(구성읍)은 탄천의 상류다. 상류는 물이 적게 마련이다. 여기에다 석성산 하나만 놓고 보면 구성은 산의 뒤쪽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김량장동(역북동 포함)은 함박산에서 부아산을 거쳐 석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감싸고 있다.

또 동쪽에는 경안천이 남에서 북으로 마을을 감싸면서 흘러가고 양지천이 마을 앞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용인시의 재정자립도가 높은 것도 이들 물과 인연이 깊다. 서쪽에 높은 산, 동쪽에 강에 준하는 냇물이 있어야 일급 택지다. 이런 조건에다가 용인이란 지명 속에는 ‘동쪽에 중심이 있다’는 뜻이 숨어 있다. 바로 ‘인(仁=東)’이 그것이다. 일제시대 행정 중심을 이곳으로 옮긴 것도 이런 이치를 눈치챈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역북동은 역동과 북동을 합친 말이다. 역은 이곳에 조선조의 금령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은 교통의 요지에 세운다. 국도 42호와 45호, 영동고속도로 등이 용인시를 가운데 두고 통과한다. 석성산이 북극성의 역할을 맡아 이들을 통제하고 있다. 역북동의 구성마을은 북극성을 따라 도는 북두칠성의 다른 이름이다.

시청을 중심으로 한 용인시내는 옥녀가 아기를 안고 있는 옥녀포아형(玉女抱兒形)의 지세다. 함박산 아래 명지대학이 있는 것이나 포아산 아래 용인대학 등이 자리한 것도 이런 지기를 수렴한 것이다. 옥녀라고 하여 모두 다산(多産)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근교의 1급 전원 주택지를 고층 아파트로 개발하게 되면 ‘안고 있는 어린 아이’를 잃는 수가 없지 않다. 조상이 물려준 좋은 지기를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주는 것도 우리 시대의 책임이다.

최영주 언론인·풍수지리연구가 (sinmun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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