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2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2세.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 여사께서 29일 향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문 대통령은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가족들과 차분하게 치를 예정이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고 대변인은 “애도와 추모의 뜻은 마음으로 전해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례는 3일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문 대통령의 어린 시절은 고인이 오롯이 책임졌다. 문 대통령의 선친인 고(故) 문용형옹은 일제 때 명문 ‘함흥 농고’를 나와 흥남시청 농업 계장을 지낸 엘리트였지만, 한국전쟁 때 피난 내려온 뒤 사업을 하다 어려움을 겪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다”(자서전 『문재인의 운명』)던 선친 대신 집안 생계를 꾸린 게 고인이다. 구호물자 옷가지를 시장 좌판에서 팔고, 연탄을 가가호호 배달했다. 선친은 문 대통령이 군을 제대한 뒤 진로문제를 고민하던 1978년,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2남 3녀 중 장남인 문 대통령의 어머니를 향한 애틋함은 각별했다. 『운명』에는 ‘구속, 그리고 어머니’란 챕터가 있다. 문 대통령은 “호송차가 막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차 뒤를 따라 달려오고 계셨다. 팔을 휘저으며 ‘재인아! 재인아!’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 혼자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라고 썼다. 책 곳곳에는 “어머니가 끄는 연탄 리어카를 뒤에서 밀면서 자립심을 배웠다”, “가난 속에서도 돈을 최고로 여기지 않게 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살아오는 동안 큰 도움이 됐다” 같은 표현이 있다.
고인을 생각하는 문 대통령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애장품이 묵주반지다. 바쁜 정치 일정으로 성당을 잘 가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한 고인이 23년 전 묵주반지를 선물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문 대통령은 왼손 넷째 손가락에 그 반지를 끼고 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틈틈이 짬을 내 고인을 만났다. 2017년 5월 취임 후 2주 만에 첫 연차 휴가를 내고 부산 영도에서 고인을 뵙고 왔고, 그해 10월 첫 추석 때는 고인을 모시고 청와대에서 차례를 지냈다. 최근에는 바로 전 주말인 26일 부산을 찾아 고인의 건강 상태를 살폈다.
고인은 2017년 4월,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고인은 “아들은 예측 가능하다. 마음이 변할 사람이 아니다. 지갑이 얇으면 얇은 대로, 두꺼우면 두꺼운 대로 사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당시 고인은 이런 문답도 주고받았다.
- 대선후보 가족으로서 힘들지 않았나.
- “고생도 즐거운 고생이 있고 나쁜 고생이 있는 거라. 우리는 즐겁게 받아들이니까. 아들이 힘든 일 하니까 조용히 있는 게 또 도와주는 거라. 가짜 진주로 된 쪼만한 목걸이 하나 있는 것도 안 차고 다녀요. 시계ㆍ반지도 안 하고. 말 나올까 봐”
- 실향민으로 왔을 때 어땠나.
- “공산군이 다리를 폭파시켜 친정은 같이 못 내려왔어. 피란 와서 명절을 맞았는데 갈 곳도 없고 고향 생각이 간절하데. 달밤에 눈물이 나더라고, 가족들 다 거기 있지, 요즘도 옛날 생각이 많이 나. 잊히지 않는 게 고향이라.”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