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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각별했던 文, 23년째 넷째 손가락에 묵주반지 끼고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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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5일, 모친 강한옥 여사와 함께 성당에 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 문재인 대선 캠프]

2016년 12월 25일, 모친 강한옥 여사와 함께 성당에 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 문재인 대선 캠프]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2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2세.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 여사께서 29일 향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문 대통령은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가족들과 차분하게 치를 예정이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고 대변인은 “애도와 추모의 뜻은 마음으로 전해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례는 3일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문 대통령의 어린 시절은 고인이 오롯이 책임졌다. 문 대통령의 선친인 고(故) 문용형옹은 일제 때 명문 ‘함흥 농고’를 나와 흥남시청 농업 계장을 지낸 엘리트였지만, 한국전쟁 때 피난 내려온 뒤 사업을 하다 어려움을 겪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다”(자서전 『문재인의 운명』)던 선친 대신 집안 생계를 꾸린 게 고인이다. 구호물자 옷가지를 시장 좌판에서 팔고, 연탄을 가가호호 배달했다. 선친은 문 대통령이 군을 제대한 뒤 진로문제를 고민하던 1978년,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2남 3녀 중 장남인 문 대통령의 어머니를 향한 애틋함은 각별했다. 『운명』에는 ‘구속, 그리고 어머니’란 챕터가 있다. 문 대통령은 “호송차가 막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차 뒤를 따라 달려오고 계셨다. 팔을 휘저으며 ‘재인아! 재인아!’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 혼자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라고 썼다. 책 곳곳에는 “어머니가 끄는 연탄 리어카를 뒤에서 밀면서 자립심을 배웠다”, “가난 속에서도 돈을 최고로 여기지 않게 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살아오는 동안 큰 도움이 됐다” 같은 표현이 있다.

고인을 생각하는 문 대통령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애장품이 묵주반지다. 바쁜 정치 일정으로 성당을 잘 가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한 고인이 23년 전 묵주반지를 선물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문 대통령은 왼손 넷째 손가락에 그 반지를 끼고 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틈틈이 짬을 내 고인을 만났다. 2017년 5월 취임 후 2주 만에 첫 연차 휴가를 내고 부산 영도에서 고인을 뵙고 왔고, 그해 10월 첫 추석 때는 고인을 모시고 청와대에서 차례를 지냈다. 최근에는 바로 전 주말인 26일 부산을 찾아 고인의 건강 상태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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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2017년 4월,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고인은 “아들은 예측 가능하다. 마음이 변할 사람이 아니다. 지갑이 얇으면 얇은 대로, 두꺼우면 두꺼운 대로 사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당시 고인은 이런 문답도 주고받았다.

대선후보 가족으로서 힘들지 않았나.
“고생도 즐거운 고생이 있고 나쁜 고생이 있는 거라. 우리는 즐겁게 받아들이니까. 아들이 힘든 일 하니까 조용히 있는 게 또 도와주는 거라. 가짜 진주로 된 쪼만한 목걸이 하나 있는 것도 안 차고 다녀요. 시계ㆍ반지도 안 하고. 말 나올까 봐”
실향민으로 왔을 때 어땠나.
“공산군이 다리를 폭파시켜 친정은 같이 못 내려왔어. 피란 와서 명절을 맞았는데 갈 곳도 없고 고향 생각이 간절하데. 달밤에 눈물이 나더라고, 가족들 다 거기 있지, 요즘도 옛날 생각이 많이 나. 잊히지 않는 게 고향이라.”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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