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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보도 개입’ 이정현 의원 항소심서 감형...‘관행’ 때문?

중앙일보

입력

한국방송공사(KBS)의 세월호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정현(61) 무소속 의원이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받았다. 이번 형이 확정되면 이 의원은 의원직 상실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정현 의원. 전민규 기자

이정현 의원. 전민규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0부(김병수 부장판사)는 28일 오후 2시 방송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의원의 항소심 선고기일에서 이 의원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보다는 형량이 낮아졌다.

1심 “정치권력의 언론 개입 관행 허용 안 돼”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홍보수석이던 무소속 이정현 의원은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양경찰청을 비롯한 정부부처의 초동 대처 미흡에 대한 내용이 보도되자 관련 내용을 뉴스에서 빼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의원은 “다시 녹음해서 만들어 달라” “하필이면 대통령이 오늘 KBS를 봤다. 국장님 나 좀 살려주쇼” 등의 발언을 했다. 검찰은 이 의원이 편성에 간섭해 방송법을 위반했다며 기소했다.

방송법 제4조와 제105조는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 의원은 “KBS에서만 사실과 다른 뉴스가 나가서 언론 담당자로서 으레 하던 항의를 했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 의원의 행동이 “민주주의의 질서를 흔들 수 있는 명백한 범죄”라고 판단했다. 또 “관행이란 이름으로 국가권력이 언론에 관여하는 행위가 계속되는 것이야말로 시스템의 낙후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여전히 이 의원은 이것이 왜 잘못인지 몰라 진지한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방송법이 제정된 지 31년 만에 위반 혐의로 유죄가 인정된 첫 사례다.

2심 “관행으로 이뤄져 가벌성에 대한 인식 부족”

28일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다르게 판단한 덕에 의원직 상실 위기에 처했던 이 의원은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국회의원은 형사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게 되는데 2심 재판부가 이 의원에게 벌금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이 의원의 방송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승객을 구조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해경이 구조 작업에 전념토록 하거나, 사실과 다른 보도를 시정하기 위해 범행에 이른 동기에 참작할 사정이 있다”며 벌금형으로 형량을 깎아줬다.

이어 “청와대 홍보수석 지위에서 이런 행위가 종전부터 관행으로 이어져 가벌성(처벌 가능성)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의 ‘관행’ 지적…한국의 관·언 관계 돌이켜봐야

언론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례로 정부와 언론의 관계를 돌이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영방송 사장직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청와대 낙하산 논란에 시달려왔다”며 이 의원의 사례가 특별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언론에 대한 압력행사를 ‘관행’이라고 표현할 만큼 우리나라의 관·언 관계는 기형적”이라며 “방송법 위반을 처음으로 인정한 이번 사례로 관·언 관계를 돌이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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