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WTO개도국' 지위 포기에 농민단체 강력 반발

중앙일보

입력

25일 오전 외교부 정문 앞에서 농민단체 회원들이 WTO 개도국 포기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전 외교부 정문 앞에서 농민단체 회원들이 WTO 개도국 포기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25일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개도국)지위 포기를 결정하자 농민단체 등이 반발에 나섰다.

25일 오전 전국농민총연맹 등 33개 단체로 구성된 'WTO 개도국 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공동행동) 측은 오전 7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 모여들었다.

공동행동 측은 "우리나라의 개도국 지위 포기는 통상주권과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농민단체들은 공개서한을 대통령에게도 보낸 바 있지만 (개도국)지위 포기방침을 보이는 정부는 농민의 간절함을 짓밟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개도국 지위 포기로 보조금이 삭감되는 데다 결국 미국의 농산물 추가개방 압력에 국내 농업 인프라가 심각하게 무너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항의 시위에 참석한 농민단체 회원들은 정부 결정에 항의하는 뜻으로 상복을 입었다. 머리에는 'WTO지위 유지하라'고 적힌 붉은 띠를 두른 채 'WTO개도국 포기 방침 철회'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외교부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농민단체 측은 이번 개도국 지위포기는 실질적인 이익이 없다고 말한다. 전국농민조합총연맹(전농) 관계자는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농업분야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지위 포기 이후엔 어려움이 더 커질 거라고 예상한다"며 "정부가 지위포기 결정을 하면서 농민들과 제대로 소통한 적도 없다"고 비판했다.
또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확실한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따르며 주권행사도 못하고 끌려 가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미래 협상 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만 쌀 등 농업의 민감분야는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유연서을 갖고 협상할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향후 새로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는 기존 개도국 특혜는 변함없이 유지한다며 미래 협상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1995년 WTO에 가입하며 개도국 지위를 주장했다. 하지만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부터 농업·기후분야 외에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농업분야에서 개도국 특혜를 인정받아 관세 및 보조금 감축률과 이행기간 등에서 선진국보다 유리한 혜택을 누려왔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