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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 일왕의 헌법수호 의지는 아버지보다 후퇴?개헌 중립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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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

"헌법에 따라"라는 표현 놓고 해석 분분 #부친 아키히토 "헌법 지키고","헌법 준수" #보수파에 '호헌파'로 지목된 부친 의식해 #정치권 개헌논의와 거리두려는 의도인 듯

22일 ‘소쿠이레이세이덴노기(卽位禮正殿の儀)’라고 불리는 즉위 선포식에서 나루히토(德仁)일왕(일본에선 천황)이 발표한 메시지 중 한 대목이다.

22일 열린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선포식에서 아베 총리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있다. [AP=연합뉴스]

22일 열린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선포식에서 아베 총리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중 ‘헌법에 따라~’라는 일왕의 언급은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가 평화헌법 개정을 맹렬하게 추진중인 현 상황과 맞물려 관심을 끌고 있다.

사실 일왕은 일본 헌법상 국가의 ‘상징’으로 현실 정치에는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개헌론과 호헌론이 맞서있는 일본 사회에서 헌법에 대한 일왕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관련 언급엔 언제나 이목이 쏠린다.

‘헌법에 따라~’로 시작되는 이번 나루히토 일왕의 발언은 지난 5월 1일 즉위식 때와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같은 표현을 5개월여만에 반복한 것이다.

 하지만 나루히토 일왕의 부친인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상왕)의 경우엔 표현이 좀 달랐다.

이키히토 상왕은 1989년 1월 즉위 때엔 “여러분들과 함께 일본국헌법을 지키고, 그것에 따르는 책무를 다할 것을 맹세하고~”라고 했다.

그 이듬해인 1990년 즉위 선포식에서는 “일본국헌법을 준수하고~”란 표현을 사용했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부친 아키히토 상왕은 이런 ‘지키고’,’준수하고’ 등의 표현 때문에 개헌에 찬성하는 보수파들로부터 ‘호헌파’로 지목받았다.

부친과는 다른 나루히토 일왕의 ‘헌법에 따라’라는 표현을 놓고 “‘평화헌법 수호’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아버지에 비해 다소 입장이 후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이와 관련, 후루카와 다카히사(古川隆久)니혼대 교수는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에서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보수층)일부로부터 호헌파로 지목받았던 아키히토 상왕과 달리 (나루히토 일왕은)표현을 부드럽게하고, 중립성을 내세움으로써 정치적인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아키히토 상왕 [중앙포토]

아키히토 상왕 [중앙포토]

TV아사히 메인뉴스에 출연한 가와니시 히데야(川西秀哉)나고야대 교수는 "전후 첫 천황인 아키히토 상왕은 전후의 일본국헌법이 자신의 존립기반임을 의식했고, 특히 헌법의 평화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준수'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현재 국회에서 헌법 개정 관련 논의가 시작된 상황에서 '헌법 준수'라는 표현을 쓸 경우 정치적인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때문에 나루히토 일왕은 다른 표현을 쓴 것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아베 총리가 주도하고 있는 개헌 이슈를 의식해 일부러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들이다.

부친의 ‘일본국헌법’이란 표현과 달리 나루히토 일왕이 ‘헌법’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도 마이니치 신문은 “현재 정치권의 테마가 돼 있는 헌법개정 논의와 거리를 두겠다는 의도"라는 전문가의 견해를 실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k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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