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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지향 정치인, 우리 주변에는 없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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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호 20면

나쁜 정치가는 어떻게 세상을 망치는가

나쁜 정치가는 어떻게 세상을 망치는가

나쁜 정치가는
어떻게 세상을 망치는가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강희영 옮김
바오출판사

『나쁜 정치가는 어떻게 세상을 망치는가』의 주인공은 ‘불사조 대마왕’이라 불릴 만한 조제프 푸셰(1759~1820)다. 프랑스혁명기의  정치인 푸셰는 이념과 상관없이 언제나 승자 편에 서서 무조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절대 신조였다. 푸셰가 처음 가담했던 온건파 지롱드당은 쓰러졌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그가 하룻밤 사이에 전향했던 급진 자코뱅파는 추방됐지만 그는 또 버텨 냈다. 총재정부, 통령정부, 제국, 왕국 그리고 다시 제국은 사라졌지만 언제나 그는 오뚝이처럼 생존했다.

푸셰는 남다른 재능을 가졌다. 침묵을 지킬 줄 아는 기술, 자기를 숨기는 마술적 기교,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뚫어 보고 기분을 살피는 능력이다. 포커페이스를 한 막후 권력자 푸셰는 배신과 변절의 화신이었다. 그는 의형제를 맺었던 혁명의 전위투사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로 보내고 충성을 맹세했던 나폴레옹의 배후를 위협해 불세출의 영웅을 붕괴시켰다. 마지막에는 임시내각의 수반이 된 뒤 루이 18세에게 권력을 팔아넘기기도 했다.

권력이라는 ‘종교’를 맹신했던 카멜레온 푸셰는 냉혈성 정치인이었다. 경쟁자들이 서로 물고 뜯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걸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승패가 결정되고 나면 언제나 승자 편에 섰다. 권력에 달라붙어 핥고 뜯어 먹기만 하면 된다는 게 그의 정치적 신념이었다. 보기 드문 완벽한 마키아벨리스트였다. 처세의 달인, 기회주의자 중의 기회주의자였다. 역사가 아닌 찰나를 살았던 그는 스무 번 넘게 분장을 바꾸면서 끝내 살아남았다.

생존을 지향하는 정치가라면 그를 롤모델로 모셔야 하지 않을까. 한국 풍토에선 특정 진영에 붙어 있어야 살아남기가 쉽다. 진영을 오가는 정치인은 철새라는 낙인이 찍혀 발붙이기가 어렵게 됐다. 그래서 다들 진영의 동아줄을 붙잡고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한다.

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최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치가 해답을 주기는커녕 문제가 돼버렸다”며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무조건 살아남기를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더 오래가기를 선택한 것일까. 이래저래 푸셰는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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