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올림픽 시민 정신 되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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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몇 해 전에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1백명을 골라 이들이 한국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어떠한 것인가를 조사해 본 적이 있다. 이들 남녀 외국인들의 60%는 미국인이었고 나머지는 호주·뉴질랜드·영국·서독·이탈리아·스위스 등 구미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 조사자료는 서양문명권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에 관한 내용의 것이었다. 이들은 6개월 이상 한국에 상주한 사람들로 한국인들과 충분한 접촉을 가진 사람들로 보아도 괜찮은 표본이었다.
공중도덕심 실종
이들이 지적한 한국인의 장점들도 여러 개 있으나(예컨대 근면성·정직성·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진지성·애국심·외국인에 대한 친절 등)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자 하는 것은 외국인이 본 한국인의 단점이다.
가장 빈번하게 지적된 한국인의 단점은 교통질서 의식의 부재, 공중도의심의 결여(특히 길에서 함부로 침을 뱉고 다른 행인들에 대한 무례함),좁은 소견(흑백 논리),너무 서두름, 감정적이고 화를 잘 냄, 지나친 자기중심주의(더러 이기주의로 표현 됨),불우이웃을 포함한 남에 대한 무관심, 시간약속 불이행, 남존여비 등이었다.
그러나 이들 한국인의 맹점을 크게 재분류하면 2가지의 항목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공중도의심이나 시민의식의 부재이고 또 하나는 지나친 자기중심주의(남존여비의 경우는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자기중심주의가 됨)내지 이기주의적 성향이다.
물론 시민의식의 부재나 공중도의심의 결여와 자기중심주의 내지 이기주의는 서로 연결되는 성향이고 따라서 이 2개의 항목을 합쳐 하나의 항목으로 통합시키면 필경 한국인의 단점은 한마디로 지나친 자기중심주의적 성향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같은 외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경가는 다소 기분 나쁜 일이긴 하지만 우리 스스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오늘날우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사회문제와 혼란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지나친 자기중심주의적 심성에서 유래한다고 보아서 크게 틀릴 것 같지 않다.
예컨대 최근까지의 한국사회의 혼란상과 불안정의 주범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아집과 독선, 그리고 이에 대한 대항세력들의 철저한 자기중심주의적 사고와 편견으로 보아서 무리는 아닌 것 같고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간의 흑백논리 내지 이분법적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을 따지고 보면 각자 자기들의 논리와 이데올로기만이 선하고 정당하며 상대방의 이념이나 논리는 악하고 부당하다는 고도의 자기중심주의적 사고에서 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를 극도로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태로 몰고 가는 이 같은 지나친 자기중심주의적 태도는 크게는 권력이나 부 또는 이념을 둘러싼 정치·경제·문화(종교·교육·예술분야를 포함한)분야에서의 집단적 대결과 충돌을 자아내고, 작게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의 불협화음과 거북함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일반시민만 피해
지금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큰 문제들, 예컨대 정치권력간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과 투쟁, 노사간의 대립과 충돌, 문교부와 교사들간의 극한적인 불화와 대결 등은 모두가 강력한 자기중심주의의 심성과 이분법적 이데올로기에 연유하는 것이고 이들 갈등세력들 간의 대립과 투쟁은 그 중간에서 직접·간접으로 피해를 보게되는 제3자들인 일반시민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 듯한 상황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들 투쟁세력들간의 중간에서 양쪽 입장을 폭넓게 고러하면서 타협과 하해를 종용하는 사람들은 일단 이들 양대 세력에 의해 공히 회색분자나 기회주의자로 매도되고 적으로 간주된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작은 문제들, 예컨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통사고율로 인한 인명손실이나 산업재해로 인한 생명 손실, 날로 더렵혀져 가는 자연환경과 이로 인해 이 강산의 물 한 방울조차 마음놓고 마실 수 없는 열악한 생활환경 등은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 즉 이기주의의 소산이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나 혼자 잘먹고 잘살면 그만이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다 함께 병들어간다.
도대체 이 같은 추악한 심성이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우리 민족만이 유독 부도덕한 이기주의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그 원인은 우리들의 환경에서 찾아질 수 있을것이다.
우리들이 안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3가지의 복합적인 요인에서 연유한다. 하나는 오늘날의 우리를 낳은 역사적 배경이고 또 하나는 현재의 사회구조의 특성, 그리고 세 번째 요인은 우리들 개개인이 자라온 환경과 이에 관련되는 개인적 특성이다.
어린이도 병들어 물론 이 3가지 요소는 서로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으면서 오늘날 한국의 현실과 우리들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사회구조적 특성은 우리들 개인의 성격과 태도에 직결된다. 우리의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의 부도덕성과 비인간성은 지금 자라는 우리들의 어린이들을 극도의 이기주의자와 독선주의자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 와서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선 우리국민 스스로의 자각과 반성, 그리고 특히 나라의 지도자들의 대오각성이 있어야겠고 이 같은 자아성찰을 토대로 이 나라의 사회구조와 제도를 개선하는 데우리 모두가 합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나 제도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이기주의의 발로다. 그리고 우리는 1년 전 올림픽 행사 때 잠시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시민정신을 발휘할 수 있음을 온 세계에 보여주었음을 기억하자. 아직도 늦지 않다.<끝> 김동일 <이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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