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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 부산서 타는 동해남부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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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바다다!"

앞좌석의 소년이 소리를 질렀다. 바다를 끼고 사는 부산 사람들이지만, 열차 창문 가득히 손에 잡힐 듯 파랗게 펼쳐진 바다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부산역을 떠난 지 약 30분. 해운대역 ~ 송정역 사이로 열차와 바다가 나란히 달리는 5분 남짓한 짧은 순간, 초록 바다는 태풍 '매미'의 아픔을 속으로 삭인 듯 잔잔히 빛났다. 바다를 지나 금빛으로 찰랑이는 논을 따라 달리다 보면, 기차는 어느새 안강역에 도착한다.

너럭바위에 앉아 마음을 씻다=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대원군의 서슬퍼런 서원 철폐령에도 흔들림 없던 유서깊은 옥산서원(玉山書院.1572년 창건)도 세월은 이기지 못한 듯했다. 색이 바랜 기와 지붕 위 무성한 잡초 사이로 청설모가 달음질쳤다. 하지만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즐기던 자계천의 풍광만큼은 지금도 숨이 막힐 듯 아름답다.

작지만 힘차게 흘러내리는 폭포, 치마 주름처럼 섬세하게 계단 모양을 이루며 검게 빛나는 너럭바위들, 바위를 타고 흘러내려오는 맑은 물, 그 위로 높다랗게 가로지른 외나무다리. 냇가 양편에 선 느티나무.이팝나무.참나무가 그늘을 짙게 드리운 사이로 가을 햇살이 부서졌다. 너럭바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다 보면, 회재가 이곳을 '세심대(洗心臺)'라 이름 붙인 이유를 절로 알게 된다.

서원에서 외나무다리를 건너 7백m가량 올라가면 회재가 낙향한 뒤 머물던 '독락당(獨樂堂)'이 있다. 독락당의 별채인 '계정(溪亭)'은 시냇물을 집안에 들여놓을 듯 자계천과 마주한다. 반대편에서 계정을 바라보면 개울가 너럭바위를 초석 삼아 다듬지 않고 올린 건물이 마치 계곡의 일부인 듯 어우러진다.

5백년 숨결이 산기슭에 어렸다=설창산(雪蒼山) 능선을 따라 역사가 숨쉬는 '양동 민속마을'(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은 5백여년 전 형성된 월성(月城) 손(孫)씨. 여강(驪江) 이(李)씨의 집성촌이다. 언덕배기 곳곳에 서 있는 1백50여채의 기와집.초가집에는 아직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가을산 속에서 수묵담채화처럼 흐릿해 보이는 옛집들은 2백년 이상 묵은 것이 3분의1이다. 나지막한 담장의 집들은 구릉 위에 띄엄띄엄 부드럽게 얹혀 있는 모습이 세월 속에 산의 일부가 된 듯하다. 능선과 골을 따라 넓게 퍼져 있는 이 마을을 알차게 돌아보는 방법이 홈페이지(http://yangdong.invil.org)에 잘 나와 있다.

안강=구희령 기자

여행쪽지=부산역에서 오전 9시55분 통일호를 타야만 하루를 오롯하게 보낼 수 있다. 안강역에서 내려 옥산서원까지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요금은 6천원. 독락당 앞에서 양동행 3시20분발 버스를 놓치지 말자. 양동에서 약 10분 간격으로 경주행 버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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