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4일 물러났다. 8·9 개각 때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66일 만, 지난달 9일 장관 취임 이후 35일 만의 '퇴장'이다. ‘서초동’과 ‘광화문’이란 두 개의 광장이 정반대의 구호를 내뿜기 시작한 지 2주 만이기도 하다.
조 전 장관은 이날 오후 2시 “가족 수사로 인해 국민께 참으로 송구했지만 장관으로서 단 며칠을 일하더라도 검찰 개혁을 위해 마지막 저의 소임을 다하고 사라지겠다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감당했다”며 “그러나 이제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하다”며 “온갖 저항에도 검찰개혁이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국민들 덕분”이라며 "국민들께선 저를 내려 놓으시고, 대통령께 힘을 모아주실 것을 소망한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은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사의 수용 의사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곤 “검찰개혁과 공정의 가치는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라고 재차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5시 38분 사표를 수리했다.
야권은 “조 전 수석 사퇴는 국민의 승리고 민심의 승리”(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라고 말했다. 또 임명권자인 문 대통령의 직접 사과도 요구했다.
이처럼 조 전 장관의 사퇴는 조 전 장관의 결정을 문 대통령이 수용한 모양새로 공개됐다. 이날 국회를 방문해 이해찬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를 만난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도 “조 장관이 계속 촛불(집회)을 지켜보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조 전 장관이 최종적인 사퇴 의사를 굳히고 청와대에 알린 건 “13일 검찰개혁안을 논의한 고위 당·정·청 회의 이후”라고도 전했다.
그러나 여권 핵심부에선 조국 퇴장 타이밍을 놓고 수면 아래 깊숙한 논의가 진행돼왔다. 청와대와 민주당 극소수 인사들만 교감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핵심 친문 의원은 지난 9월 말께 사석에서 조국 사태와 관련해 “길어야 2~3주다. 큰 변환점이 올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애초 조 장관 거취 정리 시점이 훨씬 당겨졌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딸 입시 특혜 등 의혹이 확산하던 8월 말~9월 초 여권에선 ‘조국이 청문회에서 의혹 소명 기회를 가진 뒤 명예롭게 물러나는 시나리오’가 심도 있게 거론됐다. 여권 핵심 인사는 “임명 때부터 찬반양론이 있었고 임명권자도 끝까지 가자는 건 아니었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을 진행하고 물러나야 한다는 ‘질서 있는 후퇴론’이 깔려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이 청문회 전 여권 핵심부에 “조국 후보자 문제가 심각하다”며 우려를 전달한 게 오히려 절차·원칙을 중시하는 문 대통령에 대한 ‘인사권 도전’으로 비춰지면서 이시나리오는 접게 됐다는 것이다.
여권 핵심인사들 얘기를 종합하면, 조 전 장관 거취 판단에 1차 변곡점이 됐던 건 10월 3일 ‘광화문 집회’다. 민주당은 “보수 기독교가 동원한 폭력집회”라고 깎아내렸지만 광장을 메운 수십만 명에게서 ‘조국 사퇴’에 이어 ‘문재인 퇴진’ 목소리가 커지자 “이러다 둑이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높아졌다고 한다. 조 전 장관이 이때 ‘검찰개혁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는 사임 의사를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율사 출신 한 친문 핵심 의원은 국정감사 개시(2일) 며칠 뒤 사석에서 지인들에게 “내가 차기 법무장관으로 가야 하나”라고 물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 전 장관을 감쌌던 문 대통령이 ‘절차에 따른 해결’을 강조한 건 지난 7일이다. 문 대통령은 3일 광화문 집회, 5일 서초동 집회 이후 첫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민 목소리를 엄중히 들었다. 이제 문제를 절차에 따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달라”고 했다. ▶국회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찰개혁 법안 처리 ▶법무부 내규와 시행령 개정 등 정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검찰개혁 제도화를 강조한 얘기다. 민주당이 ‘29일 본회의 패스트트랙 처리’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면서 조 장관 명예 퇴진 수순을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시행령이 개정되는 22일 국무회의 계기설도 나왔다.
결국 14일이 된 건 결국 악화된 민심이 결정타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갤럽의 9월 셋째 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40%로, 가까스로 40%대에 턱걸이했고, 리얼미터가 7~8일, 10~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국정지지도가 최저치(41.4%)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35.3%)과 자유한국당(34.4%)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0.9%포인트)로 나왔다. 조국 사태에서 여권을 이탈한 중도층이 보수 야당 지지로 급속히 돌아서는 흐름으로 해석됐다.
여당에서도 “이대로는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공포가 커졌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이 12일 한 방송에서 “여당 의원들이 나더러 조국 사퇴를 (대신) 말하라고 한다”며 한 말에 '속내'가 담겼다. “조 장관에게 ‘그만두라’고 하면 민주당 경선에서 지고, 말하지 않으면 (총선) 본선에서 진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의원은 “조국 사퇴는 결국 여론조사 결과가 제일 큰 영향을 미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이해찬 대표와 이낙연 총리가 '총대'를 멨다는 얘기가 있다. 이 총리는 지난달 3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조국 장관 해임 건의할 용의가 있느냐’는 야당 의원 물음에 “훗날 저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도 당내 여론을 종합해 퇴진 불가피론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번 주 있을 조 전 장관 부인 정경심씨에 대한 신병처리 문제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여권 핵심 인사는 “정씨 사법처리 여부에 따라 조 전 장관이 떠밀려서 나가는 모양새는 안 돼야 한다는 얘기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고 말했다.
김형구·권호·위문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