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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배출가스 검사 불합격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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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00년 7월 말 승용차를 사서 운행 중인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주부 이모(40)씨는 최근 구청장 명의로 된 '자동차 배출가스 정밀검사 안내서'를 우편으로 받았다. '7~8월 두 달 사이에 검사받지 않으면 3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문다'는 내용이었다. 정밀검사 수수료는 3만3000원(5.5t 이상 대형차는 1만9800원)이었다.

이씨는 며칠 뒤 인근의 정밀검사 사업자인 J 자동차검사소로부터 엽서를 받았다. '이 엽서를 지참한 분에게는 검사수수료 할인 혜택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J검사소 여직원은 "검사원이 합격선까지 맞춰 준다. 불합격되는 일이 거의 없다. 10~15분이면 끝난다"고 자상한 안내를 하기도 했다.

취재진이 차량 정기검사를 대행하는 다른 업체에 문의를 해봤다. "정밀검사에 불합격돼도 곧바로 매연을 빼낸 다음 다시 측정해 합격받도록 해주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 업체는 "자동차 정기검사와 정밀검사를 한꺼번에 받으려면 8만원만 내면 된다"며 "순수검사료 5만원과 검사대행 수수료 1만5000원 외에 돈이 추가된 것은 불합격에 대비한 비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자동차 배출가스 정밀검사 제도가 형식적인 검사 탓에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 엉터리 검사=서울 금천구 독산동 S사는 변속기어를 1단이나 2단에 놓고 배출가스를 측정해 주다 적발돼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시속 40㎞ 이상 속도로 주행하는 조건에서 배출가스를 측정해야 한다. 저속으로 주행하면 배출가스가 덜 나오는 점을 악용해 검사를 대충해 준 것이다.

서울 가양동의 H사와 방학동의 D사는 가속 페달을 최대한 밟지 않은 채 배출가스를 측정하다 적발됐다. 차량 보닛을 열고 연료분사량 조절 장치의 봉인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가스 누출은 없는지, 배선에는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생략하다 적발된 곳도 여러 곳이다.

올 3~6월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전국 5개 지역의 359개 정밀검사 사업장을 단속했다. 그 결과 14%인 49개 업소가 엉터리로 검사하다 적발됐다. 그나마 지난해(적발률 38%)보다는 나아졌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앞서의 J사는 단속에 적발되지 않은 검사소다.

◆ 업체 경쟁으로 제도가 겉돈다=자동차 배출가스 정밀검사는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2002년 서울에서 시작돼 부산.대구.인천.경기 등으로 확대됐다. 자가용 승용차는 구입한 지 4년이 지나면 2년마다, 택시나 화물차.버스 등은 2~3년 뒤부터 매년 질소산화물과 매연 배출량을 검사받아야 한다. 대상 차량은 전국에서 매년 200만 대가 넘는다. 7월부터 대전.광주, 11월 울산까지 확대되면 연간 260만 대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정밀검사는 교통안전관리공단이나 일반 정비업체다. 검사수수료는 정비를 해주는 기관이나 업체가 모두 갖는다. 업체들은 수수료를 깎아 주거나 검사를 대충해 통과시켜 주는 등의 방법으로 고객을 유치한다. 정부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검사제도를 만들었지만 검사업체의 주머니만 부풀리는 꼴이다.

환경부는 연간 배출가스 검사료로 운전자가 지불하는 돈이 600억원가량 될 것으로 추산한다. 검사받는 운전자도 "오염을 줄이는 효과도 별로 없는데 검사수수료와 시간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한다.

환경부에서도 이런 상황을 인정한다. 환경부 교통환경관리과 양경연 사무관은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차량 정기검사까지 민간에 개방토록 한 상황에서 정밀검사를 공공기관에서만 하도록 할 수는 없다"며 "단속반원이 차량을 직접 검사받는 암행감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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