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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공공임대주택 퇴거 조치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써야”

중앙일보

입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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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주택사업자가 임차인을 퇴거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에 대해 국가인권위가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절차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8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공공임대주택 거주민 전체의 안전보장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사람과 그 가족 역시 사회적 취약계층으로서 이들을 퇴거하는 조치는 최대한 신중하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표명했다고 밝혔다.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은 ‘안인득 사건’을 계기로 발의됐다. 안인득이 거주하던 곳은 공공임대아파트로, 범행 이전부터 그가 이웃 주민들을 위협해왔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별다른 조처가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임차인이 반복적으로 주거생활 안전을 위협하거나 폭행을 하는 등 다른 임차인에게 중대한 피해를 준 경우 공공주택사업자가 임대차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내놨다.

안인득(42)은 지난 4월 자신이 사는 경남 진주시의 아파트 집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탈출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5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중앙포토]

안인득(42)은 지난 4월 자신이 사는 경남 진주시의 아파트 집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탈출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5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중앙포토]

국토교통부는 해당 개정안과 앞서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이 2018년 발의한 개정안에 대해 인권위 의견을 요청했고, 인권위는 개정안을 검토한 결과 두 개정안이 ‘비례의 원칙’ 중 방법의 적절성과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비례의 원칙(과잉금지 원칙)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경우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는 헌법상의 원칙이다.

인권위는 “개정안은 피해의 정도가 중하지 않거나 행위의 사실관계가 객관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공공주택사업자가 주관적인 판단으로 특정 임차인의 주거권을 제한할 수 있게 한다”며 “이는 공공임대주택 임차인들의 생명, 신체, 재산과 안전의 보호라는 목적 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넘는 과도한 제한”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차인을 상대로 예방적 조치 등을 고려하지 않고 바로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보다 완화된 다른 수단이나 방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며, 또 다른 임차인에게 피해를 준 행위자를 퇴거시키는 것은 해당 문제를 공공임대주택에서 민간임대주택 부문으로 옮겨놓는 것에 불과하다”며 “이러한 주거권 제한은 그 행위자와 함께 살지만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가구 구성원들의 주거권도 부당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인권위는 공공임대주택의 임차인이 대부분 주거 취약계층으로, 해당 주택에서 퇴거당할 경우 다른 주택으로 이주하는 것이 어렵고 극단적인 경우 노숙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계약 해지 여부를 공공주택사업자 단독으로 결정하기보다 제3자 등이 포함된 기구에서 심의하도록 하거나 ▶계약 해지 당사자에게 의견진술권 부여 및 불복 절차를 마련하거나 ▶위해행위 등의 예방과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한 뒤에도 다른 대안이 없을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계약 해지 등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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