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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주의 시선

10월이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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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지난 4월은 잔인했다. 참담한 성적표가 날아들었다. 1분기 경제성장률 -0.4%(전 분기 대비). 주요국 가운데 거의 꼴찌였다. 곳곳에서 한숨이 터졌다. 사실 1분기 성장률은 굉장히 주목받은 발표였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발표 당시는 주중국 대사)의 발언 때문이었다. 2018년 그는 “연말까지는 소득주도 성장의 가시적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누누이 말했다. 그러다 연말이 다가오자 말을 바꿨다. “내년에는 실질적 효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기를 슬쩍 미뤘다.

재정·성장률 판도라 상자 개봉 #빨간불 수치보다 더 두려운 건 #꿈쩍 않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

‘정책 효과 내기’에 박자 맞추듯, 정부는 새해 들어 경기 살리기에 안간힘을 썼다. 1분기에만 연간 예산 지출의 30.8%를 쏟아부었다. 그래도 경제학계와 시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책 효과에 대한 기대보다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훨씬 앞섰다. 막상 발표된 수치는 걱정을 넘어 충격이었다. 주가지수와 원화 가치는 급속히 고꾸라졌다. 4월은 그렇게 시장에 잔인함을 뿌렸다.

이달, 10월은 두렵다. 판도라의 상자 두 개가 기다린다. 나라 살림살이와 경제 성장에 관련해서다. 하나는 이번 주에 뚜껑이 열린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월간 재정동향’이다. 여기엔 8월에 큰 장이 서는 법인세 징수 실적이 들어간다. 내년에 낼 법인세 중 일부를 8월에 미리 낸 ‘중간예납분’이다. 지난해엔 당초 법인세수 예산의 20%인 12조5000억원이 8월 한 달에 걷혔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실적에 여기저기 돈을 풀고 싶었던 정부는 반색했다.

하지만 올해 법인세수는 결코 정부 편이 아니다. 8월 중간예납분은 거의 전적으로 상반기 실적에 좌우된다. 그런데 올해 기업들의 상반기 이익은 반 토막 났다. 당연히 법인세수 또한 푹 꺼질 터다. 나라 살림에는 비상이다. 올해 42조3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던 대규모 재정 적자(관리재정수지) 폭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러잖아도 일부 글로벌 신용평가사가 한국의 재정 건전성을 주시하는 판이다. 그래서 뚜껑을 열기 직전의 긴장감이 한층 높게만 느껴진다.

두 번째 판도라의 상자는 월말 나오는 3분기 경제성장률이다. 2분기는 전 분기보다 1% 성장했다. 그러나 그건 1분기에 워낙 죽을 쒔기에 거저 줍다시피 한 결과다. 시험 30점 받은 다음에 60점 받으면 “성적이 대폭 올랐다” 소리를 듣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것도 정부가 돈을 풀어 성장률을 끌어올린 것이었다. 정부의 성장기여도는  1.2% 포인트, 민간은 역으로 -0.2% 포인트 였다.

어쨌든 2분기엔 겉보기에 선방한 수치를 내밀었다. 이와 달리 3분기는 만만찮다. 아니, 분위기는 ‘어둡다’에 가깝다. 생산·수출·투자·소비 모두 밝은 구석을 찾기 어렵다. 지난달 말 이주열 한은 총재는 "올해 (성장률) 2.2% 달성이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3분기를 놓고 “올해 1%대 성장을 예고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래저래 불안감이 감도는 10월이다. 하지만 정작 두려운 건 따로 있다. 경제 지표가 어떻게 나오든, 정부의 정책 기조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솔직히 문재인 정부의 뇌리에 ‘성장’은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난 6월 19일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내린 판단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2030년 제조업 4강과 함께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연설 보름 전 한국은행은 “2018년 1인당 소득이 3만3434달러”라고 발표했다. 2018년 그 정도에서 12년 뒤인 2030년 4만 달러면…. 계산기를 눌러봤다. 연평균 1.5% 성장하겠다는 얘기다. 만일 4만 달러가 명목소득을 뜻하는 것이었다면, 더 황당한 시나리오가 된다. 12년 내내 0% 실질 성장해도 물가가 매년 1.5%씩 오르면 앉아서 4만 달러를 달성한다.

이런 목표 수치가 대통령 연설에 버젓이 들어갔다. 이유는 둘 중 하나다. 그게 진짜 정권의 뜻이든지, 아니면 성장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 어떤 수치가 연설에 들어가도 개의치 않았든 지다. 사실 주변에 “이만큼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국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 대접받는 판에, 굳이 성장에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느 정도 성장해 나가지 않고서는 계속 이만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주장이다. 다른 나라는 성장하는데 우리만 제자리걸음 하면 수입 물가가 자꾸 올라 생활이 궁핍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장을 않겠다는 건 스스로 “서서히 가난해지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래도 이달은 정부가 그렇게 ‘자기 궁핍화’를 추구하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10월이 두렵다.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