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에「자성의 소리」높다|젊은 학승들 중심 개혁의지 반향 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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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동국대사태를 계기로 불교계에「불교가 사회현실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전국의 승가대에서 정진하고 있는 젊은 학승에 의해 자생과 함께 제기된 불교개혁 의지는 교단전체로 파급되면서 큰 반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밤 서울조계사에서 있은「6공 법난·동국대사태 규탄 범 불교도대회」에는 해인사·범어사 등 주요 사찰 안의 승가대와 중앙승가대학의 학승 1천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규탄대회를 마친 후 조계사법당과 마당에 모여 밤을 새워 불교개혁에 대해 열띤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지금이 한국불교가 자주적 발전을 이루어 민족사의 등불이 되고 국민대중과 함께 불국정토 건설로 나가느냐, 아니면 호 정권불교·은둔불교·어용불교의 나락에 떨어지느냐의 기로에 서있다는데 인식의 공감을 보였다.
젊은 비구니 스님들도 대거 참석한 이날 토론에서 학승들은『불법은 그 시대의 고통과 역사적 현실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수행과 기도와 염불은 역사의 현장에서 참 실천을 이룰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는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승려들은 자아의 완성과 정의로운 사회건설이 둘이 아니라는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 따라 중생을 건지겠다는 대원을 바로 세우고 일어서자고 강조했다.
대회는「불교자주화 선언문」도 채택했다.
역대 정권에 의해 불교가 역사와 등진, 국민과 유리된 비역사적인 상황 속으로 침잠하게 강요되고 국민대중으로부터 지탄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고 전제한 이들 학승들은 선언문에서『넓게는 인간의 자주성과 인간의 창조성을 유린하는 온갖 속박으로부터, 좁게는 불교를 관제·예속화시키는 권력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전통 속에서 산사의 학승들까지 개혁을 외치고 나온 일은 흔치 않다. 그만큼 이번 동국대사태는 불교계에 큰 충격을 준 것이다.
민족사 속에서 국민정신 계도와 민족문화의 산파역을 해온 불교가 이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데 대해 갚은 반성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젊은 승려들의 대동단결에 의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혁파의 의지가 이번 학승들의 움직임에서 드러난다.
이날 학승들은 토론 끝에 우선 대 정부규탄과 자생에 기초한 자주화선언만 했다. 일부 승려들에 의해 종단지도부에 대한비판도 있었으나 내분의 모습을 보이지 말자는 호소가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자주화선언문에서 보인 것처럼「오늘날 불교가 지배권력에 종속되어 날로 관제어용의 모습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인식은 그대로 남아있다.
학승들은 앞으로 불교개혁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여 깊이 있는 논의와 행동을 보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계 종단에서는 소장 종회위원들을 중심으로 불교개혁을 논의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25명의 초선 종회 위원들이 빠른 시일 안에 조계종 최고의결기구인 중앙 종회를 열어 대책을 세우자고 종회소집 서명을 했다.
서울 불교청년회 등 신도단체들도 불교가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종교로서의 역할을 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는 성명을 내고있다.
지난 6일밤 불교청년들에 뒤이어『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을 조용히 외면서 조계사 정문악에서 전경들과 비폭력으로 대치했던 젊은 승려들의 모습은 1천6백년 한국불교의 호흡이 오랜 침묵 끝에 뜨거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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