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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선거」폐습 없앤 셈-헌법재판소, 의원출마 기탁금 위헌결정의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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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헌법 재판소가 국회의원 출마 때 일정액을 선거관리위원회에 맡기도록 한 기탁금제도에 대해 전면 위헌결정을 내린 것은 보통·평등선거의 본질과 실질적인 국민주권주의의 내용을 재 규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결정은 또 최근 여야간에 논란이 되고있는 선거법 개정작업을 가속화시키고 비현실적이거나 위헌적 요소가 있는 다른 조항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강제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선거법 33, 34조의 위헌결정은 위헌법률 제청신청을 받은 법원에서. 위헌성을 인정,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미 예상됐던 일.
그러나 기탁금제도가 입후보의 난립과 과열선거를 방지하지 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이유 때문에 도입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기탁금제도가 없어짐으로써 일어날수 있는 문제점을 보완키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위헌이유=헌법재판소가 기탁금제도를 위헌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입후보의 자유와 기회균등을 보강한 참정권침해 ▲정당출마자와 무소속 출마자의 차별 ▲일정요건 때 기탁금국고 귀속의 위헌성 ▲형식적 주권론에 기인한 주권행사의 부당한 규제 등이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교육수준을 정부통계에서 보더라도 2O대의 문맹률이 0·6%에 불과하고 민주교육을 받은 세대가 절대다수이기 때문에 참정권 행사를 불합리하게 제한하는 선거제도가 용인될 수 있는 사회환경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다 20, 3O대 젊은 계층이 유권자의 58%가 되는 것을 감안하면 불합리한 선거법은 마땅히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기획원 자료에 따르면 89년5월말 현재 국민 총 저축 액은 1백29조5천여 억 원으로 경제활동인구 1인당 평균저축 액은 6백93만여 원이기 때문에 1천만∼2천만 원의 기탁금은 일반 서민에 가는 입후보의 기회를 사실상 봉쇄하는 과다한 액수라는 취지다.
따라서 현행기탁금은 서민계층이나 20, 30대 젊은 세대의 입후보를 제한하고 재력 있는 사람만이 입후보 할 수 있어 결국 돈이 있어야 당선된다는 점에서 모든 국민의 입후보 자유와 기회균등을 보강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
이밖에 정당 국가적 민주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정당 공천 자는 1천만 원, 무소속 후보자는 2,천만 원을 기탁토록 함으로써 양자간에 과다한 차등을 두어 무소속 출마를 억제하고 법으로 입후보자를 축소시키는 것은 국민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헌법정신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오늘날 정당정치 하에서 정당과 개인의 정치적 역할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입후보자의 선택과 심판은 국민이 하는 것이므로 입후보의 자격과 조건은 정당 인이든, 무소속이든 대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점에서 기탁금제도는 헌법11조의 평등권에 위반한다는 설명이다. 기탁금 2O%의 선거비용을 공제한 나머지를 국고에 귀속케 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 없이 국민에게 재산적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국가존립의 기초가 되는 선거제도 원리에 반한다는 취지.
유효투표총수의 3분의1미만을 득표한 후보자는 기탁금을 국고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불합리한 기준 때문에 13대국회의 경우 1천64명의 입후보자중 낙선자 8백22명 가운데 7백15명이 기탁금을 귀속 당했다. 헌법재판소는 의원선거가 국가의 중요한 통치조직을 구성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이를 헌법사항으로 규정하고 선거경비는 입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도록 하고 있는데도 기탁금을 부당한 기준에 의해 국고에 귀속시키는 것은 선거경비를 입후보자에게 부담시키게 되는 것으로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선거법은 정치성이 강해 기성 정치세력간의 협상으로 이루어지는 법이기는 하지만 헌법의 기본이념과 원칙에 어긋나고 새로운 정치질서와 정치문화의 창달을 가로막는 입법은 국회의 입법형성권 한계를 벗어난 위헌이라는 이론이다.
◇배경 및 의의=기탁금제도는 형식적 국민주권론을 내세워 전체국민을 주권자라고 미화하면서 국가권력의 행사는 재산정도를 기준으로 선출된 대표가 해오던 차등선거 제도의 유물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우리헌법은 보통선거 제를 채택하고 평등한 참정권을 보강하고 있는데도 실제로는 불공평한 기탁금제도를 두어왔다. 이 때문에 다양한 사회계층과 이해관계 집단의 대표가 의회를 구성하지 못함으로써 계층갈등·세대간 대립· 빈부간 반목 등 정치불안 요인이 가중되어 왔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
이번 결정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헌법해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지금까지의 선거법은 정치권이 정치적으로 만들어 왔으나 이제는 비정치적인 국가최고 헌법기관이 선거법의 지침을 제시했다는 점 때문이다.
◇유보규정=이번에 위헌결정이 내러졌지만 13대 낙선자들은 돈을 되돌려 받지 못한다. 헌법재판소가 단순위헌 결정을 내리지 않고 91년5월말까지 현행 선거법의 효력이 유지되도록 유보규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는 국회의 권위와 동질성을 보장하고 13대국회의 의원선출 조건에 있어 평등성을 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즉 13대 총선에서 선출된 의원과 이 결정선고 후 실시되는 재선거나 보궐선거로 당선되는 사람간에 동질성과 선출조건에 차등이 있어서는 안 되는 뜻이다.
국회의원선거법 144조는 잔여임기 1년 미만인 경우에는 재선거, 또는 보궐선거를 실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되어있어 91년5월말을 시한으로 개정할 때까지 효력을 지속할 수 있게 했다.
◇기탁금제도=72년 10월 유신으로 인한 헌정중단으로 입법권을 대행한 비상국무회의에서 73년3월12일 국회의원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고액기탁금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80년10월27일 만들어진 5공화국의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81년1월29일자로 기탁금을 올리는 등 확대했다. 현행 국회의원선거법은 이를 그대로 답습하여 기탁금을 정당후보 1천만 원, 무소속후보 2천만 원으로 증액했었다. 현 선거법은 이밖에도 입후보의 자격과 조건, 선거운동관리 등에 있어 지나친 규제조항을 두고 있지만 공정한 선거확립보다는 오히려 금권·타락선거로 선거질서를 혼탁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 이번 결정을 계기로 대폭 손질이 예상된다. <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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