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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창씨개명한 사람이 일본인인지 모르면 토지 귀속재산 아냐”

중앙일보

입력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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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원의경(竹原義暻)’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일본인일까, 한국인일까.

대법원은 해방 전후의 창씨개명 등의 실정에 비추어봤을 때 죽원의경은 창씨개명을 한 한국인으로 추정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죽원의경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는 국가 귀속재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최근 A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소유권말소등기 등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죽원의경이 경주시 산내면 내 152평 일대의 땅을 구입한 건 1942년. 해방 이후 죽원의경이란 사람을 일본인으로 본 대한민국 정부는 국유재산법상 무주(주인없음)부동산 공고절차를 거쳐 1996년 해당 토지에 대한 권리를 국가에 귀속시켰다.

문제는 해당 땅 위에 지어진 A씨 아버지의 목조 건물이었다. A씨의 아버지는 1944년 해당 토지에 무단으로 건물을 지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해당 건물을 물려받은 A씨는 2014년 2월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절차 이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토지에 대한 정부의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고, 1994년 1월부터 20년간 땅을 점유했으니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이다.

민법은 만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하고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한 경우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다.

1심은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 자체가 대한민국에 없다고 판단해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죽원의경이 일본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아무런 자료가 존재하지 않고, 이 사건 토지 소재지 일대에 일본인이 살았다거나 그 토지를 매수하였다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도 없다”며 “당시는 창씨개명이 일반화되던 시기로서 ‘죽원의경’ 역시 한국인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그 이전의 이 사건 토지 소유자들도 모두 한국인이었던 점 등에 비추어 이 사건 토지가 대한민국에 귀속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2심은 토지가 귀속재산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A씨의 소유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국유화 과정에서 A씨의 아버지에게 토지대장상 일본인 명의로(창씨개명) 된 재산에 대해 사유재산임을 증명할 수 있는 제적등본(한국명)을 구비해 이의신청하라는 공문을 발송했으나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에 일부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지만 결론은 정당하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죽원의경을 한국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보고 토지 자체는 국유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해당 토지는 정부의 소유가 맞다고 인정했다. A씨의 땅이 아닌 정부의 땅이 맞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국가가 진정한 소유자의 존재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한 후에 해당 토지에 대한 점유를 시작했으므로 ‘무과실’로 해당 부동산을 점유했다고 보고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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