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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도 텅 빈 학생회관 식당…서울대 학생들 "불편해도 괜찮아"

중앙일보

입력

24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행정관 앞에서 임금인상과 근무여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이 공동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전국대학노조 서울대지부, 민주일반연맹서울일반노조 서울대 청소경비분회, 서울대 기계전기분회 등이 참석했다. 이태윤 기자

24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행정관 앞에서 임금인상과 근무여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이 공동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전국대학노조 서울대지부, 민주일반연맹서울일반노조 서울대 청소경비분회, 서울대 기계전기분회 등이 참석했다. 이태윤 기자

“오늘은 여기서 밥 못 해줘. 미안해.”

24일 오전 11시 30분. 평소라면 점심을 먹기 위해 긴 줄이 늘어져 있을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회관이 썰렁했다. 기자가 식사할 수 있는지 묻자 내부 청소를 하기 위해 남아있던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로부터 "미안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학생식당 문 앞에는 ‘최소한의 존중을 얻고자 파업합니다’라는 제목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식당 문은 열려있었지만 음식 준비는 없었다. 식당 한편은 아예 출입이 막혀있었다. 야외 테라스에 있는 식탁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 있는 곳도 보였다. 몇몇 학생들은 물티슈로 식탁을 닦고 다른 곳에서 산 컵라면이나 샌드위치 등을 들고 앉아 점심을 먹었다. 식당을 찾았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학생도 보였다. 서울대 15학번 이모(23)씨는“파업 소식은 들었는데 학생 회관이 영업을 안 하는 줄은 몰랐다”고 했다.

서울대 생활협동조합 노동자 파업으로 영업이 중단된 학생회관의 모습. 의자로 식당 한편을 막아뒀다. 이태윤 기자

서울대 생활협동조합 노동자 파업으로 영업이 중단된 학생회관의 모습. 의자로 식당 한편을 막아뒀다. 이태윤 기자

하루 전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소속 생활협동조합(생협) 노동자들은 서울대 관악캠퍼스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생협 노동자들은 서울대 학생식당과 카페 등에서 일한다. 이들은 "에어컨도 없는 면적 2.48㎡(0.75평)의 휴게실을 8명이 나눠 쓰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고 생협 식당 노동자의 1호봉 기본급(171만5000원)이 2019년 최저임금에 미달한다"고 주장했다.

24일에는 서울대 관악캠퍼스 행정관 앞에서 서울대 생협·청소경비·기계전기 노동자 공동집회도 열렸다. 집회에는 전국대학노조 서울대지부, 민주일반연맹서울일반노조 서울대 청소경비분회, 서울대 기계전기분회 등 주최 측 추산 약 350명이 참석했다.

주최 측은 투쟁 결의문을 통해 “똑같은 서울대학교 노동자이지만 생협은 ‘별도 법인’이라고 하면서 식당, 카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게 서울대학교”라고 비판했다. 이어 “생협 소속 식당·카페 노동자들은 오늘 이후에도 파업을 이어갈 예정이며, 기계전기 노동자들은 학교가 요구를 수용할 때까지 농성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24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노동자 공동 집회에서 임민형 기계전기 분회장이 삭발을 하고 있다. 이태윤 기자

24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노동자 공동 집회에서 임민형 기계전기 분회장이 삭발을 하고 있다. 이태윤 기자

이들은 ▶임금 인상 ▶복리후행 차별 철폐 ▶휴게시설 및 근무환경 개선 등을 요구했다. 집회 마지막에는 임민형 민주노총 기계전기 분회장이 삭발을 하기도 했다. 임 분회장은 학교 측이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단식투쟁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불편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대부분 파업과 집회에 지지를 보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15학번이라고 밝힌 허지원(23)씨는 “수업 들을 때 생협 노동자분들이 화장실에 간이 의자 가져다 놓고 쉬는 모습 종종 봤다”며 “학생회관이 문을 닫으면 식사를 하는 데 문제가 있지만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 환경이 꼭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16학번 김모(22)씨는 “생협에서 파는 건 가격도 싸고 노동자분들도 늘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며 “그분들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번 파업이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지를 표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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