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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현대차도 인천공항도···비정규직의 적은 '386 정규직' 노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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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3년생인 박수훈 씨는 96년 분당신도시 32평 아파트를 1억원에 매입했다. 쌈짓돈 3000만원에 주택담보대출 7000만원을 보탰다. 당시 주택금융규제가 완화되면서 생긴 대출상품을 활용했다. 이자는 연 9%였지만, 은행 정기예금 금리(10.8%)보다 낮았다.

[창간기획] 386의 나라 대한민국 ② #386세대 1억에 산 집 8억 될 때 #후배 세대는 3억 반전세 살아 #노조는 정규직 권익보호 급급 #“비정규직 문제에 소홀” 비판

중소기업에 다니던 박 씨에게 월 52만원이나 되는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후 연평균 20%가량 아파트값이 뛰면서 결과적으로 성공한 재테크가 됐다. 현재 박 씨의 아파트값은 8억5000만원. 박 씨는 “1억짜리 집 사서 1년이면 2000만~3000만원씩 집값이 오르니 자고 일어나면 돈 벌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2. 지난해 분당신도시에 신혼집을 얻은 86년생 김성균 씨. 지은 지 30년 된 낡은 아파트에 반전세(보증금 2억원+월세 70만원)를 산다. 전셋값 3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부가 모은 5000만원에 전세자금대출 1억원, 신용대출 5000만원까지 동원했지만 1억원이 부족했다.

중소기업 직원인 김 씨는 매월 주거비용으로 대출이자까지 포함해 100만원을 지출한다. 김 씨는 “집주인이 계약만기인 내년 2월에 집을 비워달라고 해서 어디로 이사를 해야 하나 고민”이라며 “집 때문에 다른 재테크는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1988년'주택 200만호 건설'을 내세운 노태우 정권의 주도로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20~25㎞ 거리 5곳에 1기 신도시가 조성됐다. 1기 신도시인 분당신도시 전경. [중앙포토]

1988년'주택 200만호 건설'을 내세운 노태우 정권의 주도로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20~25㎞ 거리 5곳에 1기 신도시가 조성됐다. 1기 신도시인 분당신도시 전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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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불패 신화’ 주역…빚내서 집 사면 차익 커

386세대는 ‘부동산 불패 신화’의 주역이었다. 88년 ‘주택 200만호 건설’을 내세운 노태우 정부 주도로 경기도 분당‧일산 등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20~25㎞ 거리인 1기 신도시(5곳)에만 10만 가구가 들어섰다.

무주택자에게 시세보다 싼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우선순위가 돌아갔다. 막 주택 구매에 나선 386세대에겐 유리한 조건이었다. 386세대의 자가점유율은 93년 22%에서 2003년 51%로 크게 올랐다. 386세대는 단독주택·빌라보다 아파트(78%, 99년 한국노동패널 조사)를 선호했다. 당시 연령별 아파트 보유율은 50년대생이 20.9%, 40년대생이 36.2%에 불과했다.

집값은 치솟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386세대가 30~40대였던 2000년대(2000~2009년) 전국 아파트값은 38% 올랐다. 2010년대(2010~2018년) 들어서는 19%에 그쳤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386세대가 유독 부동산 투기를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 환경이나 흐름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분위기였고 386세대가 적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택 경기 호황 수혜 누린 386세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주택 경기 호황 수혜 누린 386세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렇게 장만한 아파트는 386세대의 든든한 경제적 기반이 됐다. 가령 분당 아파트 분양가는 90년대 당시 3.3㎡당 180만~200만원이었지만, 현재는 2000만원이 넘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7년(2006~2018년)간 월 평균 임금은 12% 오르는 데 그쳤다.

여기에 386세대가 경제적으로 성장한 90년대~2000년대는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는 것을 권장하던 시대였다. 금융기관도 주택담보대출 영업에 발 벗고 나섰다. 당장 돈이 없어도 은행 돈으로 집을 살 수 있었다.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치솟은 집값·전셋값은 후배세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보증금이 또 다른 주택 매입의 자금으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1989년 11월 26일 일반에 공개된 분당신도시 모델하우스에 몰린 차량 행렬. [중앙포토]

1989년 11월 26일 일반에 공개된 분당신도시 모델하우스에 몰린 차량 행렬. [중앙포토]

한국에 큰 상처를 남긴 외환위기(IMF) 한파도 386세대를 비껴갔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40~50대 차·부장급 이상에 칼끝이 겨냥됐다. 1년 만에 당시 5대 기업(현대‧삼성‧대우‧LG‧SK)에서만 6만3000여 명이 직장을 떠났다. 당시 30대였던 386세대는 임금동결 수준의 타격만 입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97~2002년까지 1181개 기업에서 정리해고나 권고사직 당한 인력의 평균 연령은 49.2세다. 선배들이 대거 퇴사하며 생긴 빈자리는 386세대가 일찌감치 메웠다. 2000년대 들어 경제가 회복세를 타면서 이들은 빠르게 승진했고 그만큼 연봉도 빨리 올랐다.

그러나 IMF 사태는 70년대생 이후의 세대에겐 가혹하게 작용했다. 98년 파견근로자법이 제정되면서 이후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생겼고, 고용 형태는 불평등하고 불안정해졌다. 직장에서 386 세대와 ‘포스트 386 세대’ 사이에 큰 간극이 발생한 것이다.

세대별 사회·경제적 여건 차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세대별 사회·경제적 여건 차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낮은 취업 문턱, 고속 승진…이후엔 ‘내 밥그릇 지키기’   

하지만 386세대가 주축이 된 정규직 노조는 자기 권익 보호에만 급급해 후속 세대와의 사회적 고통 분담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령 민주노총 소속 금속노조 조합원의 세대별 현황(2018년)을 살펴보면 17만명의 조합원 중 50대가 39.2%, 40대 31.5%, 30대 21.7%, 20대 6%다.

예컨대 지난해 현대차 노조가 비정규직으로 이뤄진 전국 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판매연대 노조)의 금속노조 가입을 반대하고 나서 파문이 일었다. 현대차 노조는 판매연대 노조가 금속노조에 가입하면 활동 범위가 겹쳐 고용안정이 위협받는다고 주장했다. 판매연대 노조원 대부분이 현대‧기아차 딜러이기 때문이다.

같은 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때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 간 갈등이 있었다. 비정규직이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이 결국 정규직의 처우 열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2000년 당시 현대차 노조는 사내하청 투입을 16.9%까지 보장하는 내용의 ‘완전고용보장합의서’를 체결했다. 이후 비정규직은 급속도로 불어났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정규직인 조합원의 몫을 덜어서 신규 채용을 늘리고 임금피크제 같은 일자리 나누기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조가 386세대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철옹성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노조가 정규직 임금 인상이나 정년 연장같이 386세대의 수혜에만 집중하니 비난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탐사보도팀=김태윤·최현주·현일훈·손국희·정진우·문현경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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