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린 놈은 자기 손에 피를 보지 않고서는 남을 때린 줄도 모른다.”
출간 두달여 만에 3쇄를 찍은 책『386 세대유감』는 386세대를 ‘때린 줄도 모르는 가해자’로 지칭한다. 입시지옥 개천에서 용은 멸종되고, 질 낮은 일자리의 비중이 늘어나고,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면 취업 낭인이 되기를 감수해야 하며, ‘노오력’만으로는 내집을 구할 수 없는 지금의 ‘헬조선’은 누구 탓인가. 이 책은 386세대에게 ‘미필적 고의’를 따진다. 지금의 50대의 얼굴에서 희생과 연대의 정신으로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시위를 벌이는 청년의 모습보단, 경제적 부와 권력을 사랑하는 ‘기득권 꼰대’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386 세대유감』의 세 저자 김정훈(1978년생·CBS 기자)·심나리(1981년생·서울대 박사과정)·김항기(1987년생·국회의원 비서관)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386 세대는 어쩌다 우리사회의 ‘꼰대’가 되었나.
김정훈=386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장기집권’이다. 386세대는 20대 때부터 60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스피커를 쥐고 있다. ‘관성화된 헤게모니’의 상황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만들었고, 세상의 중심은 자신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랫세대가 보기에는 ‘이제 우리도 좀 주도권을 가져볼 때가 됐는데’하며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창간기획] 386의 나라 대한민국 ②
- ‘꼰대’라는 소리를 듣고도 386은 끄떡없는 것 같다.
김정훈=명사(名士)들은 기꺼이 조롱을 감수한다. 일종의 너그러움인데, 386이 그런 너그러움을 갖게 된 것은 이 세상에 자신의 경쟁세대가 더 이상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보다 이전 세대는 이미 퇴출됐고, 아랫 세대는 존재감이 없다. 386세대를 견제할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조롱해라, 나는 어차피 버틸 거니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386이 늘지 않았나.
심나리=이전의 후배들은 위에서 찍어 누르면 순응을 했는데 이제 더 아랫세대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다. 386세대로부터 ‘90년대생들과 일하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다. 그들도 ‘후배들을 이해하지 않고서 지금 같은 자세를 계속하면 안 되겠구나’, ‘내 구미에 맞게 일을 시키고 이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얘네들을 잘 활용해야 겠구나’라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의 386세대를 만든 사건 한 가지를 꼽는다면.
김항기=IMF사태의 충격이 386세대가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는 분기점이 됐다고 본다. 그 이전까지 386세대는 사회의 가치나 변화, 정의와 혁명 등의 담론을 주도했지만 여기서부터 ‘생활인’으로 변모한다. 입으로는 정의를 말하지만 몸으로는 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환경이 조성됐고, 그 안에서 386은 주도적인 세대였다. IMF가 없었다면 386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었다고 본다.
-386세대의 끈끈한 네트워크의 비결은 뭘까.
김항기=동년배들끼리의 사회문화적 자본을 쌓는 데 경제구조적 조건이 중요했다고 본다. 70년대 이후 세대로 내려갈수록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386세대는 성장률이 10%가 넘는 경제호황기를 누렸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경쟁자라는 생각보다는 나의 동료라는 인식이 조금 더 강했고, 연대감이 더 커질 수 있었다.
-머지않아 386이 60대가 된다. 그들의 정년 이후의 삶은 어떨까.
심나리=산업화 세대나 더 윗세대에서도 60대를 넘어 70대 이후에도 명예교수나 공공기관 감사를 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이야 그 수가 많지 않지만, 386이 686·786이 되어서 이를 답습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에 큰 부담이 될 수 있고, 아래세대의 저항을 부를 수 있다. 60대 이후의 삶을 맞는 이들에게 어떤 사회적 역할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30·40대 정치신인의 탄생은 왜 요원한가.
심나리=과거에는 운동권이라는 우물에서 정치신인을 파 내는 식으로 발탁이 이뤄졌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나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각각 ‘DJ키즈’ ‘YS키즈’를 키웠다. 하지만 지금의 386세대는 후배세대를 키우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슨 기득권이냐’‘우리 세대에서 대통령이 안 나왔다’며 자신들은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반면 젊은이들은 정치혐오가 크다. 그들에게 정치권은 꿈을 갖고 능력을 키워 들어가 일해보고 싶은 희망찬 환경이 아니라 흙탕물이다.
-386세대 중에는 ‘밑으로 헤게모니를 넘긴다 한들, 받을 사람이 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김정훈=당연히 못 받는다. 386 이하의 세대는 시행착오의 경험이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386세대가 종신집권을 하다가 갑자기 물러나면 우리 사회는 권력의 진공상태가 돼 버린다. 그러니까 그 위기가 닥치기 전에, 다른 세대도 시행착오를 겪어볼 기회를 필요한 거다. 그 위기가 닥쳤을 때 논의하면 늦다. 지금 논의가 필요하다. 386세대만 살고 버릴 사회가 아니지 않은가.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