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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희철의 졸음쉼터

겨자색 쏘나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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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문희철 기자 중앙일보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지난봄 방영한 jtbc 예능 프로그램 ‘트래블러.’ 유유자적한 쿠바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시공을 초월한 채 도로를 굴러다니는 클래식카(classic car)가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도로를 형형색색 수놓은 자동차 색깔입니다. 토마토색 크라이슬러와 오이색 캐딜락, 피망색 트럭까지. 평생 한 번도 못 본 색상과 브랜드의 조합으로 도로가 온통 채소밭이었습니다.

쿠바 도로가 인상파 풍경화라면, 한국 도로는 목탄화라는 느낌을 줍니다. 도료업체 액솔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판매 차량의 32%는 흰색(1위)이었습니다. 회색(21%·2위)·검정색(16%·3위)·은색 (11%·4위) 등 무채색이 도로의 80%를 차지합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채색 계열일수록 중고차 가격이 덜 떨어집니다. 중고차 매매 전문기업 케이카(K카)에 따르면, 현대차 중형세단 쏘나타는 흰색 중고차가 하늘색보다 355만원 비싸게 팔린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차량의 색깔은 어쩌면 우리의 가치관을 담고 있는지 모릅니다. 현재보다는 미래를, 다양성보다는 획일성을, 그리고 개성보다는 실용을 중시하는 모습이 목탄화 같은 도로 풍경을 연출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 현대차 쏘나타의 도전에 관심이 큽니다. 지난 4월 출시한 신형 쏘나타는 8가지 외장 색깔을 선보였는데 대표 색상이 겨자색입니다.

쏘나타 색상을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건 달라지는 한국 운전자 성향을 가늠해볼 기회라고 생각해섭니다. 미국 중고차 판매업체 아이씨카에 따르면 14개 색상 중 금색 중고차 감가상각률(37.1%)이 가장 높습니다. 만약 겨자색 쏘나타가 많이 팔린다면, 한국 운전자도 더 이상 실용성만을 잣대로 차량을 고르지는 않는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체게바라 혁명은 의도치 않게 쿠바 도로를 형형색색 채소밭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국 도로 여기저기를 겨자로 색칠하는 쏘나타의 색깔 혁명. 매일 같은 풍경을 지나치는 운전자에게 강렬하고 매콤한 식감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