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말 바루기] ‘금도’는 넘을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최근 법무장관 임명과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여야 간에 극심한 대립이 이어지면서 ‘금도’란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정치적 금도를 지켜라” “민주주의 금도를 넘었다” 등과 같은 표현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금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자어로 금도(禁盜)와 금도(襟度)다. 앞의 금도(禁盜)는 도둑질하는 것을 금한다는 뜻이다. 정치인이 도둑이 아닌 이상 이런 말을 할 리는 없으니 이 단어는 따져 볼 필요가 없다.

나머지 단어인 금도(襟度)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을 뜻한다. 금(襟)은 ‘옷깃 금’자로 옷깃·가슴·마음 등을 의미한다. 주로 사람의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병사들은 장수의 금도에 감격했다” 등처럼 쓰인다. 따라서 이 ‘금도’ 역시 정치권에서 자주 쓰는 ‘금도’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금도를 어떤 뜻의 단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마도 ‘금지할 금(禁)’자와 ‘법도 도(度)’로 이루어진 금도(禁度)를 연상하는 것이라 판단된다. 이런 단어라면 일정한 한계, 넘어서는 안 되는 선 등의 의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전에 없는 말이다.

금도(禁度)라는 단어가 없으므로 “정치적 금도를 지켜라” “민주주의 금도를 넘었다” 등과 같은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다. 사전에 금도(禁度)라는 단어를 올리는 것이 한 가지다. 그럴 수 없다면 다른 말을 쓰는 것이다. “정치적 정도를 지켜라” “민주주의 선을 넘었다” 등처럼 문맥에 맞게 ‘정도’나 ‘도’, ‘(일정한) 선’ 등으로 바꾸면 된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